(살아가는 이야기)30년전 여고시절 추억 새록새록

입력 2009-04-04 06:00:00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봄 직한 생각 중 하나가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이 공간을 탈피하여 다른 곳에서 숨쉬어보고 싶다는 생각일 것이다. 내게 있어서는 경주가 바로 그곳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30년도 더 된 여고시절, 그 시절에도 고3의 압박감은 대단해서 대학에 진학하든지, 사회로 나가든지 간에 공부는 여전히 해야만 했던 날들이었고 마땅히 우리가 즐길 만한 문화 공간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해 여름, 교실 바깥은 여름의 열기로 지글지글 끓고 우리의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오후에 한 친구의 "야 ! 우리 경주 갈래?" 하는 소리는 귀가 번쩍 하는 소리로 들려 마음 맞는 친구 4명이 무작정 주머니를 털어 경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보충 수업을 빼먹고 역에서 기차표를 끊어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경주에 도착했었다. 역에서 한 친구가 지인의 집에 공중전화를 했더니 그 집에서 심부름하는 아이가 우리들을 마중 나왔는데 자전거를 타고 왔었다. 경주는 예나 지금이나 자전거가 많다. 책가방을 그 집에 두고 자전거 대여점에 가서 자전거를 빌리는데 그 아저씨가 우리를 아래 위로 훑어보시더니 "너희들 수업 빼먹고 경주까지 왔구나!" 하시며 늦지 않게 돌아오라고 하시며 자전거를 내어주셨다.

잠시나마 숨막히던 학교 수업에서의 탈출은 그 얼마나 신선했던지. 왕릉으로, 계림 숲으로 낯선 곳에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한없이 자전거를 달려나갔었다.

당장 내일 돌아가서 선생님께 혼날 생각일랑 애당초 접었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열차에서는 혼날 걱정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던 기억과 그 다음날 반성문을 써서 교무실에 불려가 혼이 났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살면서 때로는 견디기 힘든 날들이 있을 때도 그때의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금 살아가는 데 힘이 되곤 했던 곳이 내게 있어서는 경주였고 한때는 그런 경주를 틈만 나면 가곤 했었다. 지금은 어른이 되어 생의 터전을 옮길 수 없어 묵묵히 이 도시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 시간이 허락되어 옮길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언제라도 훌훌 털고 내가 좋아하는 경주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내 청춘의 사랑과 우정이 싹텄던 그곳 경주를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한다.

허계애(대구 서구 중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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