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위안화가 基軸通貨 된다면

입력 2009-04-02 11:13:50

세계 금융시장 中國 입김 가시화, 국내경제 영향 감안 대비책 필요

"금융 공포의 균형(Balance of Financial Terror)에 힘입어 안정이 유지되고 있다."

전 미국 재무장관 로렌스 서머스는 '핵전쟁은 당사자 모두를 전멸시키기 때문에 핵무기 보유가 오히려 핵전쟁을 억제한다'는 '공포의 균형론'에 빗대 달러화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진단한 바 있다. 대외채무 누적과 과소비로 미국경제가 병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의 최대 보유국인 중국이 이를 내다 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최대 수출시장의 붕괴와 자신이 보유한 달러표시 자산의 폭락으로 같이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구조화'되어 있다. 이는 기축통화(key currency) 발권국으로서 불가피한 현상이다. 세계 무역거래와 금융거래는 대부분 달러로 결제된다. 또 통화가 불안정한 나라의 국민들은 오래전부터 달러로 저축해 왔다. 때문에 미국은 실물경제의 대응가치 이상으로 훨씬 많은 달러를 세계에 유통시킬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자동적으로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이 수입할 수 있다. 미국 국민이 생산한 것보다 훨씬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는 미국에 문제가 안 된다. 자기통화로 빚을 지기 때문이다. 세계적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고 빚만 갚겠다면 달러를 그냥 찍어 내면 된다. 기축통화 발권국의 지위는 이처럼 특권적이다.

하지만 이는 상대국에는 희생을 강요한다. 주기적인 공황을 야기하는 달러 중심의 세계 금융체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산과 복지에 투자되어야 할 재원을 달러채권에 묻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대니 로드릭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개발도상국과 신흥공업국들이 외환보유로 지불하는 비용은 매년 GDP의 1%에 달한다.('글로벌 카운트다운' 하랄트 슈만'크리스티아네 그레페)

60여 년간 지속된 이 같은 달러 특권이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바로 중국이 앞장서고 러시아, 브라질 등이 뒤따르고 있는 기축통화 변경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 골자는 달러를 찍어 내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체제는 불공정하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는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일 먼저 예측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대외채무 규모는 GDP의 25%이고 오는 2010년에는 5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나라가 달러표시 자산을 계속 사들이는 일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컬럼비아 대학의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의 말대로 '결산의 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중 달러 비중은 2000년 71.1%에서 2007년 63.8%로 떨어졌다. 반면 유로화 비중은 같은 기간 동안 18.3%에서 26.4%로 높아졌다.

문제는 기축통화를 무엇으로 바꿀 것인가 하는 것이다. 중국은 IMF의 특별인출권(SDR)으로 대신할 것을 제안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위안화의 기축통화化(화)이다. 그러나 이는 영미권 국가와 일본 등 비공식적 '달러블록' 국가가 결사적으로 저지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기력을 되찾지 못하면 위안화가 적어도 아시아권의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예측도 있다.

만약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된다면? 티베트 점령통치에서 나타난 중국의 모습은 폭력적인 中華主義(중화주의)였다. 인권 유린과 강압통치에 대한 세계의 비판은 안중에도 없다. 여기에 기축통화의 지위가 더해질 경우 중화주의가 어떤 양상을 띨지는 대충 상상이 간다. 더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세계 금융체제가 들어설 것으로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아마 중화주의는 더 일방통행식이 될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우리의 최대 교역상대국은 중국이다. 이는 중국이 우리 경제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면서도 우리 경제가 그 볼모이기도 하다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위안화가 기축통화와 버금가는 세력을 얻었을 경우 어느 쪽이 현실로 다가올까. 안심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필자만이길 빈다.

鄭 敬 勳(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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