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대0 팽팽한 균형을 이어가던 후반 42분. 3분 후면 경기가 종료될 시점. 한국 선수들은 앞서 수차례의 득점 찬스를 허공에 날렸고, 경기 내내 아쉬움을 삭이던 4만8천여명의 관중들은 답답함과 안타까움에 지쳐갔다.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채울 즈음, 미더필더 기성용이 북한 진영 오른쪽 측면에서 파울을 얻어냈다.
후반 33분 이근호의 교체 멤버로 들어갔던 김치우가 키커로 나섰다. 지난달 28일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 골을 기록하면서 물 오른 골 감각을 자랑했던 김치우는 별명이 '왼발의 달인.' 김치우는 별명 그대로 골대 왼쪽 모서리를 향해 왼발로 강하게 감아 찼다. 한편으로 골대를 겨냥한 듯 했고, 다른 한편으로 동료 머리를 정조준 한 것인지 다소 애매하던 공은 북한 골키퍼 리명국 앞에서 바운드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날아온 공을 향해 골대 근처에 있던 남북 선수들이 높이 치솟으면서 리명국의 시선을 가리는 행운도 더해졌다. 골로 확인되는 순간 한국 선수들은 김치우에게 달려들었고,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북한 선수들은 망연자실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이 그동안 4차례나 무승부에 그쳤던 남·북 축구 대결에서 1대0으로 승리하며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의 8부 능선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1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 축구 더비에서 승리한 한국은 3승2무를 기록하며 승점 11점을 확보, 아시아 최종 예선 B조 선두로 다시 올라섰다.
한국은 볼 점유율과 슈팅에서 북한을 압도하며 경기를 지배했지만 북한의 철벽 수비는 좀처럼 골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이 기록한 슈팅은 21개, 북한은 9개에 불과했다.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파상 공세를 펼쳤지만 북한은 무리하지 않았다. 수비 중심의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치며 한국의 공세에 끈질기게 대응했다. 스리백은 물론 좌, 우 윙백까지 수비 진영에 가담했고,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한국은 북한의 밀집 수비를 뚫을 만큼 공격수의 개인기가 뛰어나지도 못했고, 공격 때 수적인 우위를 만들지도 못하면서 고전했다. 중앙에서 어렵게 만든 찬스에서는 세밀함이 부족했고, 역습 찬스에서는 빠른 패스가 따라주지 못했다. 다행히 김치우가 경기 후반 회심의 골을 기록하며 귀중한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관심을 모았던 이근호는 여전히 경기 감각을 찾지 못한 모습이었다. 후반 중반 2차례의 결정적 찬스를 맞았지만 모두 골키퍼 정면으로 향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허 감독은 "굉장히 중요한 경기에서 이겨서 최종 예선 통과의 고비를 넘었다. 선수들이 집중력을 갖고 서두르지 않으면서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며 "점점 팀이 좋아지고 있어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대표팀은 오는 6월 6일 아랍에미리트(UAE)와 B조 최종 예선 원정 6차전을 치른다. 이어 10일에는 사우디와, 17일에는 이란과 최종 예선 경기를 갖는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는 2일 새벽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홈 경기에서 3대2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3승1무2패(승점 10)를 기록, 같은 B조에서 북한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 득실(북한 +2, 사우디아라비아 0)에서 뒤져 3위에 머물렀다. 반면 UAE는 월드컵 축구 본선 진출 경쟁에서 가장 먼저 탈락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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