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도시와 견주지 말라…대구만의 색깔 보여라

입력 2009-04-02 06:00:00

[대구 도심 재창조] 대구 도심정책 진단

▲ 대구 도심재창조의 첫단계는 도심에 어떤 성격을 부여해서 어떤 색깔로 꾸미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대구만의 독특함을 보여줄 수 있는 도심을 만드는 일에 대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대구 도심재창조의 첫단계는 도심에 어떤 성격을 부여해서 어떤 색깔로 꾸미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대구만의 독특함을 보여줄 수 있는 도심을 만드는 일에 대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동성로에는 이미 여러 가지의 도심재창조 관련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다. 대구 도심의 대표거리답게 역사와 문화, 개성과 활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는 시민들의 노력도 보태져야 한다.
▲ 동성로에 최근 설치한 데크형 벤치.
▲ 동성로에는 이미 여러 가지의 도심재창조 관련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다. 대구 도심의 대표거리답게 역사와 문화, 개성과 활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는 시민들의 노력도 보태져야 한다.
▲ 동성로에 최근 설치한 데크형 벤치.

10년 후, 20년 후 대구 도심은 어떤 모습일까. 대구시와 중구청, 민간에서 이제 막 사업들을 펼치기 시작한 시점에서 섣불리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초기 단계인 탓에 지금 내다본 대구 도심의 미래는 다분히 비관적이다. 정부 부처 관계자들은 "대구의 도심재창조 관련 구상과 추진 상황은 대단히 선도적"이라고 높게 평가하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들과의 비교일 뿐, 세계의 도시들과 어깨를 견주기에는 요원하다. 경제난 돌파의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대구가 도심재창조마저 앞서가지 못한다면 도시 전체의 쇠퇴는 불가피하다. 대구의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시킬 방안들을 추슬러, 빠르게 풀어나갈 추진력이 필요한 때다.

◆대구 도심의 정체성은

동성로 공공디자인 개선, 근대문화공간 디자인 개선, 방천시장 예술프로젝트, 패션주얼리 전문타운 건립, 교동시장 공영주차장 건립…. 현재 대구에서 진행되거나 계획 중인 도심재생 관련 사업들은 20개에 가깝다. 도심재생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기본구상 용역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얼핏 도심을 새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분주해 보이지만, 다양하게 펼쳐지는 게 오히려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도시경쟁력을 좌우할 얼굴, 즉 도심의 정체성을 분명히 규정한 뒤 그에 맞춰 사업들을 취사선택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경민 대구YMCA 사무총장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도심의 얼굴이 불분명해져 개성을 잃고 만다"며 "대구에서만 볼 수 있고, 대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깔로 도심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구 도심에 가장 어울리는 얼굴은 어떤 형태일까. 전문가들은 여러 분야 가운데 역사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달성토성과 대구읍성, 경상감영 400년사와 국채보상운동 등 역사의 발자취들을 되살리고 개발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시의 도심재생 기본구상 용역을 수행하고 있는 대구경북연구원 이상용 선임연구원은 "전국의 도시들 가운데 역사성에 가치를 두고 도심재생을 추진하는 곳은 거의 없다"며 "역사도시로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살리면 개성 있는 도심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와 스토리는 역사성을 돋보이게 할 콘텐츠로 꼽힌다. 김 사무총장은 "진골목 등 도심의 수많은 골목과 유적들에 이야기를 얹어야 다른 도시와 차별화할 수 있고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며 "시민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다양하게 활용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심재창조 컨트롤타워가 없다

대구 도심재창조의 원칙과 방향이 불확실하고, 다른 종류의 사업들이 제각기 추진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정체성 규정에서부터 세부 사업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조율할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각기 다른 부서에서 자기 원칙대로 사업을 추진하는데다 협의와 조정이 거의 이뤄지지 않다 보니 일은 분주하게 벌였지만 정작 모아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다. 공공디자인엑스포 등 전국 단위 행사에서 대구가 주목받지 못하는 원인이다.

대구시 도시재생과가 도심재창조 업무 전반을 맡고 있지만 기본구상을 마련하는 정도다. 게다가 도시재생과는 주택정비와 뉴타운정책, 주거환경개선과 역세권 개발 등 개발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세계 도시들의 도심 재창조 추세와는 거꾸로다. 하재명 도심재창조연구회장(경북대 건축학부)은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지방도시의 경우 사업성을 내세워 아파트와 대형건물을 짓는 방식의 개발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인구가 늘어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짜인 법체계를 바꾸고 지방도시의 상황에 맞게 보존과 개발을 함께 추진하는 도심재창조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은 도심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의 재창조와 관련해서도 시급한 일이다. 구청들 사이에 노후 지역을 개발하고 인구를 늘리려는 경쟁이 뜨거운데 이를 조정하는 역할은 어디서도 못하고 있다는 것. 하 회장은 "지역 간 이해가 상충되지 않는 범위에서 보존과 개발, 관리와 재생 등을 추진하려는 대구시의 노력이 시급한 때"라고 말했다.

대구시 박대녕 도시주택국장은 "도심재생사업이 큰 틀의 구상 없이 산발적으로 진행돼온 게 사실이고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것도 맞는 지적"이라며 "도심재생 기본구상이 확정되면 전체 사업을 이끌 기구를 만들고 조직체계도 그에 맞춰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민 이끌 구심력이 떨어진다

일본 나가사키시는 2006년 '나가사키 사루쿠 박람회'를 계기로 '일상 그대로의 나가사키를 걷자'는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개발, 추진했다. 30분 정도면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지난해까지 40여개나 선정해 관광객과 시민들이 걸으며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코스지도를 만들고 가이드를 양성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도 힘을 쏟았지만 눈여겨볼 것은 주민들의 참여다. 걷는 동안 나가사키 시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생생히 체험할 수 있도록 식당 주인, 사찰 주지 등 다양한 사람들을 연결해준 것. 이 프로그램은 관광객 증가와 수입 증대라는 목표를 이뤘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참여라는 기대 밖의 성과까지 거뒀다.

대구시가 도심재창조 관련 정책을 결정하고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중시해야 할 요소는 도심의 주민과 대구시민들이다. 주민들과 시민들의 참여 없는 사업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현재 대구 도심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사업들에 대해 "추진과정의 문제보다 사후관리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고 입을 모은다. 대구시의회 류규하 부의장은 "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들을 추진하지 않으면 참여율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성과를 지속시키기도 어렵다"며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행정당국의 발상 전환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민 사무총장은 "행정기관 주도의 일방적인 도심재창조가 아니라 주민, 시민단체, 전문가 등의 힘을 모으고 함께 사업을 추진하며 사후관리까지 책임질 기구를 만드는 일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구, 꿈을 꾸자

대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3년세계에너지총회 등 굵직굵직한 행사들을 유치하긴 했지만 세계인들에게 대구를 자랑할 콘텐츠는 변변치 못하다. 여러 행사들이 끝나고 나면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도시가 오히려 쪼그라드는 사태를 겪을지도 모른다. 대구 도심과 도시 전체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큰 그림을 그리되 원칙에 맞춰 하나하나 추진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금의 사고와 시스템, 방식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른 채 억지 미소를 짓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그나마 위안은 이런 고민을 다른 도시에 비해 일찍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해양부 김건호 도시재생 담당 서기관은 "세부적인 실행계획이 아직 미흡하지만 대구시의 기본구상은 다른 지자체보다 한결 앞서 있다"며 "하반기에 도시재생 지원법을 마련할 계획인데 방향을 잘 잡으면 대구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 김영대 도시디자인총괄본부장은 "도심이 쇠퇴하고 대구가 어려운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더 치밀하게 분석하고 사회경제적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방향에서의 도심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가장 대구다운 도심이 어떤 모습일지 시민 모두가 함께 꿈을 꿔보자"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재경·서상현기자 사진·이채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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