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주체가 되지 못한 이들, 그들이 주역이 되는 시대 열렸다
내가 주체란 표현을 쓰자니 우습다.
똑 북조선 짝퉁 같아서다.
그러나 언어란 공용의 재산이다. 함부로 쓰는 자가 문제지, 옳게 쓰는 사람이 잘못일 리는 없다.
옳게 쓰는 사람
그 사람은 또 옳게 사는 사람이기도 한 법이다. 누가 옳게 사는 사람일까? 옳게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오늘 우리 삶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것을 안다는 것은 그러나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것을 아는 길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들 삶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아는 일이다. 그래 그 주체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 또한 그리 쉬운 대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문제이겠다.
어찌 보면 유산자, 중산층, 비즈니스맨, 지식인들 같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노동자, 농민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들이 주체가 아니라고 대답하기 이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으니 어떻게 사는 사람이 주체냐 하는 것이고 그럴 땐 왜 그러냐 하고 묻는 속에서 그 사회적 삶의 바람직한 철학이 무엇이냐에 대한 그야말로 바람직한 철학적 대답이 나오는 법이다. 또 그것이 나올 때 바로 그 주체를 중심으로 한 삶의 삶다운 개선 행위가 시작되는 것이며 비로소 그 삶과 사회는 제대로 발전하게 되는 법이다.
과연 주체가 누군가?
그것은 시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면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이고 이 시대는 어떤 사람들이 주체로 되는 것일까?
이 시대를 쉽게 규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해서 또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과연 무엇인가?
나는 지난해 봄 서울 시청 앞 촛불시위 때 이런 글을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기고한 적이 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주체가 나왔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단 한번도 주체가 돼 본적이 없는 '꼬래비들', 즉 미성년, 주부들, 그리고 비정규직이나 노인, 홈리스를 포함한 쓸쓸한 대중들이다."라고.
이제 과연 새로운 시대라고 부를만한 때가 시작되었는가? 되었다.
유럽 보수 경제학의 온상인 '마가렛 대처룸' 안에 그대로 앉은 채 영국 보수파 총리 고든 브라운이 왈,
'워싱턴 콘센서스는 끝장났다. 이젠 보수도 진보도 그 하나만으로는 경제학도 정치학도 아무것도 아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런던 타임스)
워싱턴 콘센서스가 무언인가?
대처와 레이건이 합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장 전략이다. 그것이 끝장났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시대가 아닌가?
독일 수상 메르켈이 최근 동유럽의 대몰락을 보고 내뱉은 말이라고 한다.
'유럽은 어두워지고 이다. 동쪽부터 컴컴해지고 있으니 이 밤은 과연 그 어떤 역사적인 종말일 것인가?'
이 시대를 혹자는 로마 문명 붕괴의 6세기 후반, 유럽 르네상스 이후 중세 카톨리시즘 몰락의 17세기 중반에 비교하기도 한다. 요컨대 유럽에 대한 세계 지배의 전체 역사가 끝난다는 뜻이다. 이른바 正易(정역)의 '己位親政(기위천정)'이다.
지난 3월 26일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뉴딜 연합'세미나에서 좌우사회과학파 전원이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 '아파트 거주자, 전업주부, 노인, 입시준비생'이라고 입을 맞췄다. 바로 촛불의 주체들 아닌가!
예수복음의 그 '네페쉬하야들'이고 '예루살렘 입성'과 '무덤에서 부활하는 하늘나라의 주인공들'이며, 정역의 바로 그 '기위천정'때의 十一一言(십일일언)의 주체들 아닌가! 정말 새 시대 새 삶의 주체들이 이들 아닌가!
누군가 코웃음을 치며 '긴급한 위기 대응의 뉴딜경우니까 그렇지'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그날 200여명의 좌우 사회과학자 거의 전원이 대체적으로 합의된 공론의 흐름이 이제껏 단 한번도 서양식 사회과학이 사회적 주체로서 다룬 적이 없는 바로 이들이야말로 이제부터 오고 있는 새 시대에는 참으로 새로운 사회과학 연구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과연 새시대는 새시대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김지하(시인.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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