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이에 명문대 교수직과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삶을 접어야 하는 운명을 감당하는 방법은 불평불만이 아니라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신나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날은 꽃샘추위가 벌어진 목련꽃 봉오리를 위협하고, WBC 결승전이 우리를 들뜨게 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방송이나 신문 등 모든 언론매체들이 추위와 야구 이야기를 쏟아놓으면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박찬호'이승엽'김병헌 선수 등 기대주들이 빠지고 감독 선정에 혼선을 빚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결성된 대표팀이지만 기대 이상으로 선전, 전 국민을 흥분과 환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신문지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 비닐 막대기를 흔들어대는 극성 야구장 팬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던 나조차도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올라간 경기에 매료돼 진료 중간에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를 볼 정도였다. 야구 때문인지 그날은 외래도 한산하고 예약 환자마저 발걸음이 뜸했다. 전날 절친한 지인이 갑상선 수술을 받고 입원한 병원에 다녀온 터라 불현듯 한가한 틈을 타 위층의 유방갑상선클리닉에서 진료나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평소 시원시원하던 후배 원장이 "바로 검사해보죠"라며 호탕하게 나를 진찰대로 끌고 간다. 검사 도중 "원장님, 가슴은 정상이고요. 갑상선에 기분 나쁜 혹이 하나 있어요. 당장 조직검사합니다"라며 바늘을 목에 들이댄다. "아직 마음에 준비도 안됐는데…"라며 나지막하게 읖조리는 사이 이미 바늘은 내 몸속에 들어와 있었다.
결과는 원장의 말대로 수술해야 하는 기분 나쁜 혹이었다. 최종 진단을 듣는 순간 나의 감성과 주관적인 정서는 눈물로 연결되는 서러움과 외로움이었다. 30분가량 서글펐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게 위로와 격려로 다가온 것은 '랜디 포시'라는 카네기멜론대학 교수의 책이었다.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란 책으로 동영상이 첨부돼 있다. 그는 췌장암이 간으로 전이돼 방사선 수술까지 받았지만 한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란 진단을 받고 대학에서 마지막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내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것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동영상 첫 화면은 "나는 말기암환자이지만 체력은 여러분들보다 낫다"며 팔굽혀펴기를 해 보이는 익살로 시작한다. 자신의 꿈이 어릴적에는 프로축구 선수였고 그 후에는 디즈니회사에 입사하는 것인데 이루지 못하고 컴퓨터 공학 교수가 됐다. 교수가 된 후 알라딘 마법융단을 그래픽, 디즈니사와 같이 일하면서 늦게나마 꿈을 이룬다. 꿈을 이룰 때 벽을 만나면 그 벽은 방해물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를 시험하는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미남 교수는 죽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방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사과하며, 감사하며 살라"고 한다. 사과는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어떻게 고쳐드릴까요?" 그 다음엔 "실천하라"고 한다. 감사는 인간의 표현 수단 중 가장 간단'강력하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힘주어 "불평불만으로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삶의 방식도 밝힌다.
메이저리그 최초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은 백인 관중들이 자신에게 침을 뱉고 야유할 때 불평불만 대신 열심히 경기를 하였고 자신 역시 젊은 나이에 명문대 교수와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들을 두고 접어야 하는 운명을 감당하는 방법은 불평불만이 아니라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신나게 사는 것이라 했다. 생을 한 달 앞둔 그는 낙천적인 '티거'라는 만화 캐리커처를 보여주며 "인생을 활발하게 낙천적으로, 신나게 재미있게 살라"고 삶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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