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3m35cm의 거인 철갑 무사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보다 강한 철(鐵)을 생산하기 위한 가야인들의 열망은 마침내 철갑 무사를 둘러싼 '리우 강철'로 결실을 맺었다. 숫적으로 우세인 신라의 기마부대를 맞아 맹렬히 싸웠지만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창과 화살 속에 갑옷 곳곳에 구멍이 뚫렸고,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포로 신세가 돼 버렸다. 신라인들은 철갑 무사를 마치 꼬치에 꿴 오리 마냥 쇠사다리 위에 걸어두고 킬킬거렸다. 만신창이가 된 채 숨을 헐떡이는 철갑 무사의 앞으로 말에 올라탄 신라 기마병이 깃발을 치켜들고 전리품이 가득 실린 수레를 끌며 지나갔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철갑 무사는 마치 꿈을 이루지 못한 '미완의 전설'마냥 박제돼 있다.
청도군 풍각면에 둥지를 틀고 있는 작가 리우(44·본명 이장우)가 '문화공간 KMG'에서 기획전을 열고 있다. '미완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온통 철갑으로 둘렀다.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철갑 무사의 원래 이름은 '문명-대가야'. 컴퓨터 본체 20여개를 망치로 두드려 편 뒤에 작두로 일일이 잘라내고 나사를 박아서 만들었다. 작품을 만든 소감을 물었더니 "팔이 뻐근했다"고 답했다. 앞서 수레를 끄는 신라 기마병은 '현의 노래' 때문에 상상해 본 이야기일 뿐 실제 작품명은 '굿모닝 미스터 백'(백남준을 뜻한다). 역시 컴퓨터 본체 15개를 뜯고 부순 뒤 다시 조립해서 만들었다. 마치 로시난테에 올라탄 돈키호테같다. 짐수레 위에는 컴퓨터 본체가 회색빛 몸체를 드러낸 채 수북히 쌓여있고 그 위엔 회색빛 우산까지 꽂아 두었다. 전시공간이 실외인 탓에 비가 오면 우산을 편다나.
리우는 청도의 사계를 담은 플래쉬 애니메이션을 직접 제작한 뒤 작품 속 모니터를 통해 보여준다. 작품은 비싸다. '대가야'는 2천만원, '굿모닝 미스터 백'은 1천만원 가량. 불황 속에 작품을 팔 생각이나 있는지. 하지만 지난번 작품은 한 철강 회사에 팔렸고, 다른 작품은 대구 중구청에서 임대해 전시 중이다. 리우는 "컴퓨터 본체를 분해·조립하면서 디지털 문명을 재조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문화공간 KMG'에 전화를 걸면 "KMG 내과"라고 한다. 전시장이 병원 한 복판(하지만 실외)에 있기 때문. 전시는 5월 6일까지. 053)627-7575.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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