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길

입력 2009-03-27 11:09:58

'길'이란 이탈리아 영화가 있다. 명배우 앤서니 퀸이 열연한 이 영화의 주인공 잠파노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를 끌고 곳곳을 떠돌며 차력을 선보인다. 그의 조수 역할을 하는 여인은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젤소미나다. 지능이 모자란 젤소미나를 박대했던 잠파노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회한에 젖어 통곡한다. 방랑자를 다룬 만큼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길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은 세파에 휘둘리는 두 주인공의 고단한 삶을 상징한다.

길만큼 희로애락이 녹아든 존재도 드물다. 다른 장소를 이어주는 통로란 물리적 기능을 넘어 길은 삶의 체취가 배어 있는 정감어린 공간이다. 거기에는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역사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런 길에 대한 재발견이라고 할까. 세계적으로 길 열풍이다. 비단길보다 앞선 가장 오래된 무역로인 茶馬古道(차마고도)는 각국 여행객들로 붐빈다. 중국 윈난'쓰촨성에서 시작해 티베트 인도 파키스탄 등지에 이르는 장장 5천㎞에 이르는 이 길은 차와 말의 교역로여서 그 이름이 붙었다. 이 길을 다룬 다큐멘터리 방영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이곳을 다녀왔거나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사람들이 차마고도에 매료되는 이유는 산과 강을 따라 난 유려한 길도 볼거리지만 길에 스며든 고단한 삶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성찰할 수 있어서다.

제주도 사투리로 거리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올레를 찾는 행렬도 길어졌다. 2년 전 첫걸음을 뗀 제주 올레는 현재 10여 개 코스가 선정됐다. 바다와 돌담, 오름과 바람 등이 한데 어우러진 제주 올레는 인생의 짐을 잠깐 내려놓고 호젓하게 걸으며 사색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경북도가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지나다녔던 영남대로 등 도내에 산재한 다양한 옛길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선인들의 정취가 묻어 있고 백두대간과 낙동강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옛길을 생태'문화탐방로로 복원한다는 것이다. 퇴계예던길, 죽령옛길, 추풍령옛길, 간고등어길, 조선통신사길 등 찾아보면 옛길은 무궁무진하다. 복원된 옛길은 관광객 유치에 도움을 줄 것이다. 나아가 많은 사람이 옛길을 걸으며 고달픈 인생길에서 잠시나마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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