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꼴찌로 달리기

입력 2009-03-25 06:08:49

꼴찌로 달리기/정임표 지음/선우 미디어 펴냄

1955년생 정임표씨가 수필집 '꼴찌로 달리기'를 출간했다. 1955년생, 그는 이른바 '7080 세대'다. 혹독한 가난을 이겨냈지만 역사의 '주류'가 되지는 못한 세대, 선배들을 깍듯이 존경했으나 후배들로부터는 제대로 선배 대접을 못 받는 세대, 첨단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딘지 구식인 세대, 열심히 일했지만 쓰지는 못한 세대인 셈이다. 작가는 그런 자신을 꼴찌로 달리는 아이에 비유하고 있다. 이 아이는 꼴찌로 달리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아이는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살았지만 꿈을 잃지 않고 달려온 우리나라 중년 세대들이다.

찌그러진 노란 양재기에 강냉이 죽을 쑤어 배급하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 송아지를 키우던 이야기, 도시락으로 싸온 밥이 쌀밥도 보리밥도 아닌 찐쌀로 지은 노란 밥이어서 남들 몰래 숨어서 먹었던 이야기, 껄끄러운 밥이 좀처럼 넘어가지 않았지만 쌀밥을 싸주지 못한 어머니 가슴 아플까봐 꾸역꾸역 먹었던 이야기, 밥이 남은 도시락을 어머니께 드릴 수 없어 남은 밥은 땅에 묻었던 이야기, 가출을 생각하던 날들에 관한 이야기, 시골의 청년들이 기차를 타고 도시로 떠나던 이야기, 떠돌이 거지였던 키다리 이야기, 동네 꼴머슴으로 살다가, 돈 벌어 오겠다며 월남으로 떠났던 사람, 그리고 끝내는 돌아오지 않았던 사람에 관한 이야기, 아지랑이 어지럽던 날 몽당연필 꾹꾹 눌러 '부모님 전상서' 한 장 남기고 속옷 보따리 들고 새벽 기차 타고 떠난 또순이 누나 이야기다.

중년 남자가 보아온 세월이 어디 그것뿐일까. 홀치기하던 동순이 누나는 첫눈 내리던 날 구로동으로 갔다. 객지로 떠도는 여동생을 역 광장에서 붙잡아 두들겨 팼던 동네 형은 기름값이 물보다 싸다는 사우디로 떠났다. 기적 소리가 울릴 때마다 동네 형과 누나들은 어디론가 떠났다.

작가는 이 책에서 눈물겹고 아쉬운 시절, 그러나 원망하거나 잊을 수 없는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어려운 경제 환경에 주눅 든 청년들을 향해 '힘내라'고 외치고 있다. 작가는 지금 이 시절이 '길이 사라진 땅'처럼 보이지만 그 길 없는 길에서도 꽃은 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258쪽, 1만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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