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일했다가 자격 박탈"…실업 강요하는 실업지원제도

입력 2009-03-23 09:18:41

"딱 이틀 일했다고 실업급여를 박탈하다니…."

A(65)씨는 지난해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활하다 두달 동안 단 이틀을 일했다가 79만원의 실업급여를 전부 환수당했다. 남은 기간에 대한 실업급여 150만 원 상당액도 지급제한 처분을 받았다. 일한 기간은 1개월 중 하루에 불과했지만 노동청으로부터 두번 적발당한 셈이 돼 2개월분의 실업급여가 환수되고 향후 받게 될 실업급여도 박탈당했다. A씨는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일했을 뿐인데 실업급여마저 박탈당하면 생계는 어쩌란 말이냐"며 "공짜로 나랏돈을 받는 처지에 신고를 하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근로행위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 불합리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급여받고 싶으면 일 하지마?

갑작스럽게 실직에 처한 근로자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고 재취업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만든 실업지원제도가 오히려 실업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석달째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이모(32·여)씨는 "야간 PC방 아르바이트라도 해볼까 생각하고 일자리를 구했는데 그렇게 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말을 듣고는 포기했다"고 했다. 시급 4천원 받는 일을 8시간 하는 것보다 차라리 놀면서 실업급여나 받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씨는 "지금 같은 경기침체 상황에 번듯한 직장 구하기는 힘들고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려 했는데 그럴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노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며 "이런 제도 아래에서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는 동안에는 과연 누가 일을 하려 하겠느냐"고 했다.

4개월 동안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직업훈련원을 찾은 한 남성은 좌절만 안고 돌아서야 했다. 기술이라도 배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고 싶은 마음에 직업훈련소를 찾았지만 한달 31만원의 '푼돈'으로는 생계가 힘들고, 훈련받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 그만큼 수당이 줄어드는 이중 장벽에 막혀 다시 대리운전 일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직업훈련할 때 받는 각종 교통비와 훈련수당(11만~최고 41만원)이 몇 푼이나 된다고 다른 일을 하면 깎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훈련에만 몰두하든가 수당을 포기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어이없는 제도"라고 불평했다.

실업지원제도 자체가 실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업급여 수령기간 중에는 일하기보다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아르바이트·일용직에 나서고도 아예 신고를 하지 않는 '양심불량자'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직자 김모(48)씨는 "집에서 빈둥거릴 수만 없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번 40만원을 신고하지 않았는데 좀 찜찜하다"며 "저처럼 불안한 마음을 가진 실직자들이 한둘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바꾸자

전문가들은 "실업급여 수급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손실이 크다"며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북대 문무기 교수(법학과)는 "실업지원제도는 보호의 필요성이 높은 사람에게 급여를 주려고 만든 제도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운용되지 않고 있다"며 "일상적인 소득에 대해서는 실업급여를 박탈하는 것이 맞지만 일시적이고 비정상적인 소득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수준까지 인정해 주는 제도상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문 교수는 "본인의 노력에 의해 추가로 발생하는 소득까지 '평등'이라는 잣대로 선을 그어서야 어떻게 근로의욕을 높일 수 있겠느냐"고 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홍주환 전 연구위원은 "실직 상태에 있을 때에 한해서만 지급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기보다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요즘 경제 상황에서 실업급여보다 많은 액수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다수 실직자가 실업급여도 받고 다른 일을 해서 생계를 보조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한정된 예산을 국민에게 나눠주다 보니 엄격한 잣대가 불가피하다"며 "하지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일찍 일자리를 찾게 될 경우 남은 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시불로 지급하는 '조기 재취업 수당' 등의 제도도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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