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오직 ~할 뿐'

위기 돌파 위한 해법 다양해도 지위 걸맞은 충실한 의무 '우선'

요즘 膾炙(회자)되는 유행어로 '난 ~할 뿐이고'가 있다. KBS 2TV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한 개그맨이 기자 역할을 하며 인기를 끈 말이다. 취재 현장을 누비는 이 기자는 본인이 원하지 않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면 '난 ~할 뿐이고'를 연발한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처지가 돌변하는 反轉(반전)의 묘미가 있어 이 유행어를 패러디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를테면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회사가 느닷없이 구조조정을 해 본인이 대상자에 포함되자 "난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에게 빨간 내복을 사 드리고 싶을 뿐이고"라며 절규하는 식이다.

'뿐'은 다만 어떠하거나 어찌할 따름이란 뜻을 갖고 있다. 개그를 하는 데 이 말이 쓰이기도 하지만 웅숭깊은 말씀에 쓰이기도 한다. 그 본보기가 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저자인 현각 스님이 최근 펴낸 '부처를 쏘라'에 나온다. 스승인 숭산 스님의 법문과 생전 에피소드를 모은 현각 스님은 이 책에 담긴 스승의 가르침은 '오직 ~할 뿐'이 핵심이라고 했다. 숭산 스님은 '밥 먹을 때는 오직 먹을 뿐' '수행할 때는 오직 수행할 뿐'이라며 순간순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씀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解法(해법)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풍미했던 諸子百家(제자백가)가 부활한 것 같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 '비관 바이러스'를 차단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희망과 행복을 찾아야 한다, 집중'창의'추진력이 중요하다는 등 다양한 해법들이 난무한다. 다 맞는 말이고 나름 훌륭한 논리가 있다. 여기에서 또 다른 해법을 내놓아 골치 아프게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오직 ~할 뿐'이란 말을 통해 위기를 낳게 된 원인을 되짚어 보고, 위기 돌파 해법을 한번쯤 같이 고심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직 ~할 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 本分(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직분, 곧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위기를 불러온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사여구 필요 없이 정치인의 본분은 국민이 잘 먹고 잘 살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본분을 다하기는커녕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고 있다.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나마 있는 꿈마저 앗아가는 게 이 시대 정치인들이다. 투자를 해 이익을 내는 게 본분인 기업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적재적소에 투자하지 않고 돈을 금고에 쌓아만 뒀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의 본분은 조합원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있다. 민주노총이 이 본분을 잊고 이념적 투쟁에 매몰되면서 조합원은 물론 국민에게 신뢰를 잃어 그 위상이 추락하고 말았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장애인, 노인 등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야 할 돈을 빼돌려 제 뱃속만 채운 비리 공무원들도 본분을 망각한 파렴치범들이다. 가능성 있는 인재를 발굴, 제대로 키우는 것이 대학의 본분이지만 그 본분을 잃어버린 채 가공된 인재들만 모으는 데 혈안이 된 게 우리 대학의 현주소다. 입학사정관제를 도입, 창의력과 잠재력 있는 학생들을 키우겠다는 KAIST의 발표에 대다수 사람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것도 본분을 다하려는 자세 때문이다.

孔子(공자)가 위대한 것은 그의 사상이 시공을 뛰어넘어 진리로 계속 빛을 발해서다. 정치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공자는 君君臣臣父父子子(군군신신부부자자)라 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세상사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다. 그 지위와 역할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다시 말해 본분을 다하라는 뜻으로 넓게 해석할 수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본분을 다할 때 그 사회는 조화를 이루고 발전할 수 있다. 반대로 본분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혼란스러워지고 퇴보하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가 그나마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오직 ~할 뿐'에 충실한,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 조금이나마 있는 덕분이 아닐까 싶다. 본분을 다하는 것이 위기를 돌파하는 열쇠다.

李大現(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