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물이 차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를 보면 엄마도 심장이 멎을 것만 같다. 이미 심장의 3분의 1 정도가 굳어버린 아들. 병원에 입원이라도 시켜놓고 숨이라도 편히 쉬게 해주고 싶지만 '가난'이라는 굴레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아들에게 잠시의 고통조차 덜어주지 못하게 만들었다.
17일 오전에 만난 박경숙(41·수성구 지산동)씨는 퀭한 얼굴이었다. 밤새 한잠도 자지 못했다고 했다. 아들 권구현(17)군이 밤새도록 심장에 돌덩이를 눌러놓은 듯 갑갑하다며 뒤척이는 바람에 박씨도 밤을 꼴딱 새웠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아들이 혹시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퇴원한 지 벌써 3주째. 박씨는 "왜 갑자기 이렇게 큰 시련이 연이어 닥치는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몇년째 췌장염을 앓던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지 고작 4개월 만에 아들이 '급성 확장성 심근병증'과 '울혈성 심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멀쩡했던 아들이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걸음조차 휘청거리게 됐다. 박씨는 "이 모든 것이 거짓말만 같다"고 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은 지난해 10월 중순이었다. 췌장염과 당뇨를 앓고 있던 남편은 병원에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그렇게 어이없이 세상을 떠났다. 막일을 끝내고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와 이부자리에 누운 것이 마지막이었다. 식당에 일을 하러 나갔던 박씨는 "'아빠가 이상하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달려왔지만 이미 남편의 몸은 싸늘히 식은 후였다"고 했다. 병을 앓은 지는 6년째였지만 생계를 잇기가 막막하다 보니 치료는커녕 힘에 부치는 막일을 해야 했던 남편이었다.
남편이 떠난 빈자리를 지우기 위해 이사를 하고 새로운 출발을 결심한 지 4개월. 아들이 감기에 걸린 줄 알고 보건소를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커져 있는 상태이니 큰 병원을 찾아가라는 것. 그 길로 아들은 입원을 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워하는 상태가 됐다.
답답한 마음에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찾아가봤지만 병원에서는 "심장이식으로도 어렵다"고 했다. 근육이 서서히 약해지는 병인 '근이양증' 때문이라 심장이식 수술을 해봤자 결국은 다시 심장이 서서히 멈출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구현군은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 심장에 물이 차 있다 보니 자꾸 구역질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손 벌릴 데도 없어 병원 치료도 받을 수 없다. 두 곳의 대학병원에 낸 진료비만 500여만원. 국가에서 주는 11만8천원의 생계비가 수입의 전부인 상황에서 병원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 박씨는 "친정 형제들이 조금씩 도와줬지만 다들 제 살림 꾸리기 빠듯해 더 이상 도움을 청할 염치도 없다"고 했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과 아들의 발병이 잇따르는 바람에 얼마전에야 겨우 기초생활수급 조정을 요청했는데, 장애진단을 받으려면 구현이의 병세가 6개월을 지나야 한다고 해 당장은 병원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취재 내내 박씨는 소리를 낮게 낮췄다. 아직 아들이 자신의 병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구현이가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되면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마저 놓아버릴까 두렵다"고 했다.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모르는 구현군은 "새로 입학하는 학교 구경은 해야 한다"며 부득부득 교복을 입고 입학식에 참석했을 정도로 학교 생활에 애착을 보였다고 했다.
"남편도 병원 치료 한번 제대로 못 받고 그렇게 세상을 떠나보냈는데 아들마저 손도 못 쓰고 이렇게 지켜봐야만 하는 걸까요?" 끝내 박씨는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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