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당첨금 후배들에 내놓은 '소녀가장' 천초록양

입력 2009-03-14 06:00:00

'동병상련'(同病相憐). 말처럼 실천은 쉽지않다. 남동생과 함께 거친 세파를 헤쳐 온 소녀가장 천초록(22·사진)양은 올해 경북도립대학 피부미용과를 졸업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장학금 100만원을 내놓았다.

지난 2007년 대학입학 당시 (주)아모레퍼시픽이 주관한 장학생 공모에 제출한 수기가 당선돼 받은 장학금 200만원 중 절반이다. 공모 추천 교수였던 최정숙 교수가 맡았던 장학금 100만원은 같은 대학 피부미용과와 모교인 예천여고 신입생 후배 2명에게 각각 50만원씩 전달됐다.

초록양은 부모의 이혼으로 어릴 때부터 엄마와 헤어졌고,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불우한 가정형편 때문에 초록양의 중학교 시절은 혼란과 방황의 연속이었다.

고아가 된 초록양의 방황을 바로잡고 꿈을 길러준 사람은 백부와 백모였다. 백부모의 보살핌으로 중3 겨울방학때부터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이면 미용실에서 기술을 배웠다. 대학 2년 동안에도 줄곧 장학생이었다.

초록양은 "어렵고 힘든 시기에 큰아빠와 큰엄마, 그리고 교수님과 미용실 원장님 등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비록 적은 돈이지만 나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꿈과 사랑,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초록양은 대학졸업 후 지난 5년간 자신을 헤어디자이너의 길로 이끌어 준 석영미용실(원장 황중덕·43)에서 일하고 있다. 최고의 헤어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은 여전하다.

예천에는 초록양처럼 애옥살이 형편도 불구하고 또다른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쌈짓돈을 내놓는 '기부천사'들이 많다.

예천군장학회에 1천~3천원씩 꼬깃꼬깃 아껴두었던 돈을 내놓은 농촌 할머니들과 겨울철 난방비를 절감해 10만~20만원의 목돈을 마련해 기부하고 있는 경로당 노인들, 군것질을 참으며 모아뒀던 용돈 5만원을 선뜻 전달한 초교생 '따뜻한 손'들의 온정이 줄을 잇고 있다.

이 때문에 예천군장학회에는 11일 현재 기탁약정액 20억원의 3배가 넘는 65억원의 기금이 모였다. 이 중 80 % 이상이 주민들의 소액 성금이다. 예천군 관계자는 "삶이 고단한 이들이 오히려 남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며 "이들이 있어 우리 사회는 아직도 희망이 넘친다"고 했다.

예천·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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