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만들어 두었던 메주를 두고 온 집안 사람들이 모여 1년 양식을 만드느라 분주할 때쯤 난 옛적 뛰어다니던 동네 야산을 올랐다. 개나리가 눈을 틔우고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양지바른 냇가에는 버들강아지가 날개를 보듬고 뽀얀 속살을 수줍게 내밀고 있었고 경칩이 지났으니 금방이라도 개구리가 뛰어나오기라도 할 것 같다.
30년 전 이곳에 올라와 어깨동무하며 멋 내기 좋아하고 노래 부르던 머슴아들은 벌써 중년이 되어 가고 사춘기 첫사랑은 벌써 머리밑이 하얗게 세어 가고 있을 것이다.
산수유 꽃가지 꺾어 수줍게 사랑 고백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봄바람 탓이었을까, 우린 서로 이미 걷고 있었다. 너랑 나랑 자주 앉아 사랑 틔우던 바위 무덤에 오늘 나 혼자 살포시 앉아 봤더니만 겨우내 얼어붙었던 서릿발 탓인지 그때 우리 정처럼 온기는 없더구나. 온 동네가 훤히 한눈에 들어오고 10년 후 약속을 철석같이 했었는데 지금의 내 맘 추억 속엔 공허함만 남았다.
유난히 가슴 설레며 지금도 생각나는 여자 아이는 지금 뭘 하며 살까? 시샘 많은 마누라가 알면 큰코다칠 일이지만 가끔씩 선잠에서 깨어나면 생각날 때도 있다. 난 아무래도 소심한 탓일까 봄을 많이 타는가 보다.
이 봄 다 가기 전 첫사랑도 봄바람 설레어 친정 나들이 한번쯤 오지 않을까 싶어 주말이면 자주 와서 자꾸만 동구 앞을 내려다보는 내 속마음은 무엇인지.
아! 이 봄 다 가기 전 한번만이라도 꼭 보고 싶다.
김종백(대구 달서구 이곡동)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