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에서 10여년간 미용실을 하던 최모(43·여)씨는 지난달 폐업신고를 했다. 끝모를 불황 탓에 손님이 크게 줄면서 지난해 9월 종업원을 내보내고 혼자 가게를 꾸려왔다. 그나마 최근엔 드문드문 찾던 손님의 발길도 끊겨버렸다. 힘겹게 버텼지만 운영비도 건지지 못한 채 빚을 내다 가게를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최씨는 "매일 오전 9시부터 12시간 동안 일해도 한달 매출이 100만원이 채 되지 않고 지난해부터는 재료비까지 30%가량 올라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폭탄 맞은 골목상권
10일 오후 대구 달서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폐업' 딱지를 붙인 가게들이 즐비했다. 가게를 인수하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텅 비어 있어 주민들은 해만 떨어지면 무섭다고 했다. 대구 중구의 한 가게는 지난해부터 계속 주인과 업종이 바뀌고 있다. 건물 주인은 "세를 주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세입자가 찾아와 그만두겠다고 해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대구 곳곳의 골목상권은 마치 폭격을 맞은 전쟁터 분위기였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하는 김모(52)씨는 "요즘은 외식하는 가족단위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돈이 말라버렸다"며 "매달 적자가 쌓이는데다 더 이상 돈을 빌릴 데도 없어 20여년을 꾸려왔던 가게 문을 이제는 닫아야 할 처지"라고 허탈해 했다.
대구시내에 문닫는 가게가 쏟아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뭘 해도 안 된다"며 아우성이다. 소비를 이끈 중산층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안 사고, 안 먹고, 덜 꾸미는 풍조'가 확산하면서 골목 상권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이 때문에 미용실, 음식점 등 대표적인 서민대상 자영업은 폐업이나 업종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남구에서 분식집을 하는 이모(39)씨는 최근 식당을 부동산에 내놨다. 3년 전 퇴직금으로 받은 돈으로 주택가 골목에 분식집을 열고 부부가 함께 김밥과 라면 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 왔다. 개업 초에는 그나마 벌이가 괜찮았지만 그 기간이 길지 않았다. 이씨는 "최근 몇 달 동안 하루 매출이 3만~4만원에 그쳐 한사람 일당도 벌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이씨는 건물 임대 재계약 날짜가 다가오면서 가게 문을 닫기로 했다. 이씨는 "별다른 재주도 없고 자본도 없어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골목마다 있던 미용실의 폐업이 가장 두드러졌다. 대한미용사회 대구시협의회에 따르면 대구시내 8개 구·군청에 등록된 미용실 수는 2005년 4천750개에서 지난해 4천510개로 줄었다. 박영환 사무국장은 "대구 상황이 전국에서 가장 안 좋은 것 같다. 실제 폐업 신고는 안 했을 뿐이지 각 구마다 30~40개 업소가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창업바람마저 잠재워…
불황 때면 고개를 들던 '창업' 붐도 시들해졌다. 대구시소상공인지원센터에는 요즘 지난해보다 3배가량 많은 소상공인이나 실직자가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지난 1, 2월 동안 하루 200~300명이 찾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은 업종전환이나 정책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찾아오는 가게 주인들이다. 센터 관계자는 "가게를 계속 꾸려야 할지, 아니면 다른 업종으로 바꿔야 할지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이 많다"며 "상권 입지나 뭘 해야 할지 등 문의만 할 뿐 정작 창업에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골목 음식점 수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실직 등으로 문을 여는 소규모 식당이 많았으나 요즘은 영업부진으로 창업마저 뚝 끊겨버렸다. 한국음식업중앙회 대구시지회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회원업소는 1만9천321개로 1년 전에 비해 530여개 업소가 줄었다. 서영일 총무부장은 "아무리 경기가 어려워도 창업과 폐업 수가 비슷하게 유지되는데 요즘은 좀 다른 것 같다"며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 매달 300여개 업소의 주인이 바뀌었고 최근에는 500개가 넘는 업소가 폐업으로 가게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자영업자들이 신(新)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노동부 등 관련 부처는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영세 자영업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근로자가 직장을 잃을 경우 고용보험을 통해 실업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으나 자영업자는 실업자가 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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