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장수(경북대) 지음
지난달 10일 미국 재무부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최대 2조달러를 추가 투입한다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2008년 이후 지금까지 총액 7조8천억달러, 한화로 1경92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구제금융이 시장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정부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조항을 신설하여 미국 제품 우선 구매, 미국 노동자 우선 고용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프랑스까지 '바이 프랑스'에 가세하였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르노SA와 PSA 푸조-시트로앵 등 자동차 업체에 60억유로(80억달러)를 지원하면서 자국산 부품과 서비스를 일정 비율 이용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토록 자유시장, 공정한 경쟁을 부르짖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하던 미국과 프랑스, 두 주축 국가가 하루아침에 돌변하고 만 것입니다.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국가보호주의로 급선회한 것입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취해 우루과이라운드, 도하개발어젠다를 배회하던 하부 추종 국가들입니다. 하루아침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인 무한 경쟁의 자연 상태에 방치된 것입니다. 다 자기 탓입니다. 어렵더라도, 그 길이 설사 삽과 곡괭이만으로 만든 오솔길이라 하더라도 제 닦은 길로 한걸음씩 가야 했습니다. 남이 닦은 신작로에 무임승차한 결과입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이야기하던 '제3의 길'이 새삼스럽습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며칠 전 남태평양으로 떠났던 이명박 대통령이 근 일주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적도를 넘어 남반구까지 길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미국도 막히고, 중국도 막힌 상황에서 미개척시장(blue ocean)을 개척하여 우리 길을 뚫으려는 의지였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남태평양은 우리가 가야 할 큰 길은 아닙니다.
우리의 길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남의 오지랖에서 헤매는 동안에도 큰 길, 작은 길 모두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길은 우리 안에 있고, 앞으로도 우리 안에 있을 것입니다. 채장수 교수의 저서 '탈냉전과 진보적 민주주의론'(한국학술정보, 2007)이 바로 '우리 길' 찾기의 지침서 중 하나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야만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주체인 '민(民)'이 지배하는 동시에 지배당하는 이중적 주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가 제 길을 가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민주(民主)' 즉 '민은 주권의 주인이다'는 '형식적 승인'과 '민은 주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승인'의 불안한 결합이 계속되어 민주주의 지체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저자는 '시민사회론'과 '제3의 길' '자유' '평등' '국가' 등 민주주의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는 소재를 다루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추상적인 이념인 동시에 구체적인 현실인 '자유'와 '평등'을 '사회를 전유하는 '자유'와 '균형으로서 평등'으로 재설정한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진보적 민주주의론을 비판하기 위해 저자는 첫째 평등의 재구성에 대한 태도, 둘째 시장 경제의 제어에 대한 태도, 셋째 자유와 평등 사이의 상호 침투와 안정적인 균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분배자로서 국가에 대한 태도로 구분하여 분석했습니다. 서론에서 결론에 이르는 명쾌한 논리는 둘째치고라도, 채 교수의 서체는 솔직하고 담백한 맛이 있습니다.
진보적 지식인이라도 감히 말하길 꺼려 하는, 그러나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을 소탈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조리있고, 체계적인 논증 과정을 거쳐 탈냉전 이후의 대표적인 진보적 민주주의론인 '시민사회론'과 '제3의 길'에 대해 '시장의 확대와 국가의 축소를 통한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후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현재의 '시장 헤게모니'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헤게모니의 등장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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