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앞둔 시점, 이승만이 미국 조야의 주목을 끈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폭로한 저서였고, 또 하나는 철저한 반소련'반공주의였다. 1941년 초 이승만은 '일본 폭로기'(Jap an inside out:The challenge of today)를 출판했다. 출간 당시 미국인들은 혹평했지만 얼마 후 평가는 180도 달라졌다. 그해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침략하면서 하루아침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이승만은 이 책에서 "일본이 알래스카나 하와이를 공격할 수 있다"고 예견했다.
이승만은 1910년 프린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은 국제법에 관한 것이었다. 이승만이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에 치중한 것도 40년 가까운 외국생활을 통해 얻은 국제정세 감각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1948년 이승만이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한 것도 고도의 '일본 흔들기' 전략이었다는 평가다.
당시 일본 정부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위기감을 느끼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는 극비문서가 지난해 도쿄 고서점가에서 발견됐다. 당시 일본 외무성은 "유엔이 승인하면 일본 영토에서 제외된다"며 쓰시마 방위에 관해 우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1952년 전격 발표한 '이승만 평화선'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어업수역을 정하자는 내각 결의를 뒤엎고 영토적 관점에서 독도 기점의 '평화선'을 선포했다.
한일 양국이 오늘 서울에서 제10차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 획정 회담을 개최한다. 양국 EEZ가 겹치는 동해와 남해 및 동중국해상의 경계 획정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이번 회담에서도 한국은 독도와 오키섬의 중간선을,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의 중간선을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팽팽히 맞설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일본은 EEZ가 겹치는 수역에서 해양과학조사를 실시하는 문제까지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배타적경제수역은 곧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도발 저지와도 뗄 수 없는 관계다. 양보할 수 없는 한 판인 것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 체결한 신한일어업협정처럼 자충수를 두거나 한일기본조약 체결 때 터져 나온 "얻은 것은 돈이요, 잃은 것은 평화선이다"는 외침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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