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나무야 누워서 자라」/ 박진성

입력 2009-03-02 06:00:00

오르간의 건반이 눕는다 나무야 누워서 자라 건반이 일어날 때마다 풍성한 햇빛이 쏟아져 나와 뿌리를 덮는다 어머니, 나무가 누워서 자면 이 잎새와 꽃들은 어쩌라고… 강박증에 걸린 목련이 꽃을 밀어내면 싹둑싹둑 모가지를 잘라내시고 나무들이 하나씩 누울 때마다 건반을 하나씩 뽑아내시고 설움을 다 받아먹은 오르간을 불사르시고

누워서 자는 나무는 물론 아파서 누워 있는 시인의 육체이다. 그 육체가 괴로운 것은 불필요한 '잎새와 꽃들' 때문일 것이다. 나무의 잎새와 꽃들의 무성함이 안타까운 게 아니라 육체가 괴로운 시인에게 잎새와 꽃들의 무성함은 금단의 열매처럼 안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라고…'란 독백이 시작된다. 오르간은 어머니이다. 아마도 흰 건반은 지고지순 어머니 손가락의 의인화일 것이고 검은 건반은 속이 타들어가는 어머니의 괴로운 검은 손가락일 것이다. 강박증에 걸린 목련의 꽃들은 누워서 자는 시인의 땀흘리는 꿈이다. "나무들이 하나씩 누울 때마다 건반을 하나씩 뽑아내시고 설움을 다 받아먹은 오르간을 불사르시"는 어머니의 간병은 처연하다. 그 나무는 나무이되 고통을 못 견디는 사람에 더 가까운 나무이다. 박진성의 나무들은 숲의 나무가 아니다. 한 그루로 외롭고 쓸쓸하게 모퉁이를 차지하고 서 있다. 그 나무는 처연하고 당당하고, 희로애락 사계절을 다 섬기는 나무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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