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시사 코멘트] '막말' 인플레이션

입력 2009-02-28 17:13:05

흔히 말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을 가늠하곤 한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말은 무게가 있고 진실이 있으며, 이런 말들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다. 반면에 세 치 혀만 놀리는 막말은 '되는 대로 함부로 하는 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그런데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막말 보도가 끊이질 않고 있다. 방송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서부터 정치인들의 막말이 문제가 되더니 이제는 대학 총장까지 막말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막말 해서 성공한 연예인이 여럿이다 보니 "막말 하면 뜬다"는 게 방송가의 새로운 규칙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것이 한때의 유행이라면 이제는 바뀔 때가 된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 유명대학의 모 총장이 강연회에서 여제자를 가리키며 한 성희롱성 발언으로 수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총장의 "이렇게 생긴 '토종'이 애도 잘 낳고 살림도 잘한다" "감칠맛이 있다. 요렇게 조그만 데 매력이 있는 거다"라는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이다. '풍류를 알면 정치를 잘한다'는 게 그날 강연 주제였다는데, 그분은 이런 막말 잘 하는 게 풍류라고 생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 그분은 "그런데 (미스코리아) 심사하기 좋은 방법이 있어요. 그럴듯한 사람을 하나 갖다가 세워놓고 옆에다 못난이를 갖다놓으면 금방 예쁘게 보여"라고도 했다. 이 대목에 이르니 바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비판적 현실주의 작가인 에밀 졸라(Emil Zola)의 단편소설 '돋보이게 해주는 사람'에 등장하는 뒤랑뜨라는 인물이다.

백만장자인 뒤랑뜨는 어느 날 어여쁜 아가씨와 못생긴 아가씨 두 명이 나란히 걸어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때 못생긴 아가씨가 어여쁜 아가씨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고 추녀를 장식물로 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추녀를 빌려 동행하면 숙녀 여러분의 아리따움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더욱 돋보이게 될 것이라 광고하고 지금으로 치면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추하기 짝이 없는 한 부인이 추녀를 빌려 자신의 미모를 돋보이게 하려고 찾아온다. 이 부인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뒤랑뜨는 전국에서 추녀를 모집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추한 여인이라 하더라도 눈빛이 초롱초롱하거나 입가에 고혹적인 미소를 띤다거나 하는 등 각기 특색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이치를 이용해 큰돈을 번 뒤랑뜨도 결국에는 절대적으로 추한 여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소설에서 에밀 졸라는 돈으로 추녀를 사서까지 자신의 아름다움을 치장하려고 했던 당시 프랑스 부르주아 사회의 현실을 냉정하게 풍자하고, 동시에 자신의 추함을 팔 수밖에 없는 여인들의 고통 어린 정감과 가엾은 운명을 그려내고 있다. 에밀 졸라의 이 소설은 아름다움은 상대성을 지니고 있으며, 아름다움과 추함은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미학적 이치를 형상적으로 보여 주는 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학 총장으로 계시고 더욱이 예술을 한 분이 어찌 뒤랑뜨 같은 말을 많은 사람 앞에서 그리 쉽게 했을까. 강연회 장면을 보면 지루한 분위기 한 번 바꿔보려고 한 말 같은데 너무 생각 없이 말한 것 같다. 대학 측도 해명하기 바쁘고 "평소 존경하는 분인데 언론에 잘못 나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해당 여제자의 인터뷰 기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한 사람의 적절하지 못한 말 몇 마디에 여러 사람이 곤욕을 치르는 형국이다.

옛말에 "말이라는 것은 행동의 표현이고 행동은 말의 실상이다. 말을 쉽게 하면서 행동을 삼가는 사람은 있지 않다"고 했다. 막말은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낳기 때문에 옛 선인들은 늘 그것을 경계했다. "입은 남을 해치는 도끼이다(口是傷人斧)"란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막말의 일상화는 사람들 사이에 진심을 전할 수 없게 만든다. 어떻게 막말에 진심을 담을 수 있겠는가. 근래의 거친 사회 풍토도 그런 막말이 남발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온 사회가 막말 인플레이션을 진화하는 데 나서야 할 것 같다.

대구한의대 중어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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