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이 만난 사람] 패션 패터니스트 이현미

입력 2009-02-28 06:00:00

파리를 떠나오기 이틀 전 나는 샹젤리제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개선문도 마찬가지였다. 이현미(40)씨에게 전화를 했다. 패션 패터니스트인 그녀는 내가 파리에 도착할 때 드골 공항에서부터 떠나오는 날까지 정이 듬뿍 담긴 편의를 내게 베풀어준 이다. 우리는 파리에서 같이 먹는 마지막 식사를 근사한 곳에서 하기로 합의했다. 그녀가 많은 고민을 하며 정한 곳은 샹젤리제 루이비통 매장 뒤의 홍합과 새우 요리로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조금 이르게 샹젤리제에 도착한 나는 개선문에서 직선으로 뻗은 거리를 잠시 쏘다녔다. 가로등엔 막 하나 둘 불이 켜졌고, 개선문 아래에선 늙은 퇴역군인들이 전통 복장을 한 채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사열행진(査閱行進)을 하고 있었다. 2차대전의 레지스탕스들이 아닐까, 그 의식은 절로 그렇게 상상될 정도로 진지하고 의미 충만해 보였다. 사람들 틈에 섞여 그들이 하강한 국기를 접는 장면까지 본 뒤 자리를 떠 화려한 상점들의 쇼윈도를 기웃거렸다. 그때 국철 출구를 벗어난 이현미 씨가 나를 향해 바삐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날의 홍합과 새우 요리는 정말 탁월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와 같이 먹었던 아랍과 터키 그리고 중국, 베트남 요리들이 모두 맛있었단 기억이 난다. 파리에 있는 동안 종종 그녀는 바쁜 시간을 쪼개 몽파르나스나 바스티유 골목 구석에 있는 맛있는 집으로 나를 이끌곤 했다. 물론 자주 만난 다른 이들과도 일본 우동이나 초밥, 카나페에 곁들인 사과술, 프랑스식 스테이크 등을 먹으러 다녔는데, 그곳들도 그들이 오랜 파리생활 중 발견한 줄을 서서 먹어야하는 숨은 맛집일 때가 많았다.

우리나라에 비해 그다지 비싸지 않으면서 맛있는 파리의 음식에 재미를 붙인 나는 단지 점심 한끼를 해결하러 루브르 박물관엘 들르기도 했다. 그곳 맥시코 음식점의 칠리콘카르네는 말 그대로 매콤한 맛을 즐기는 나라에서 온 여행객의 지친 몸과 입맛을 산뜻하게 바꾸기엔 제격이었다. 아, 생각난다. 영화 '아멜리에'의 촬영 배경지를 찾아나섰다가 실패한 뒤 그 장소로 추정되는 주변의 카페에 혼자 쓸쓸히 앉아 먹은 크링 브흘레, 커다란 숟가락으로 표면을 톡 깨뜨리며 나는 오드리 토두를 떠올렸다. 숙소 옆 빵집의 수많은 바게트들과 케이크들은 또 얼마나 맛이 있었던가.

그러나 그 많은 음식들보다 나는 처음 도착했을 무렵 파리 19구에 위치한 이현미씨의 집으로 초대받아 가서 먹은 음식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공인회계사인 이현미씨의 남편 다미앙이 창 너머 멀리 에펠탑이 보이는 멋진 주방에서 직접 요리해 준 음식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그리고 일부러 멀리까지 찾아가 사왔다는 아라비아 단과자와 진한 에스프레소는 파리 어느 카페보다 더 맛있었다. 향 좋은 코냑 몇 잔을 마시며 이현미씨의 통역으로 두런두런 나눈 그 이야기 내용은 지금 생각이 나지 않지만 참 깊은 정(情)이 깃들어 있었던 노을녘이었단 기억으로 내겐 남아있다.

이현미씨는 현재 파리의 패턴 전문회사인 Prototextile사의 디자인 및 패터너로 활동을 하고 있다. 정확하게 패터너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국에서 그리 보편적인 직업은 아닙니다. 패션브랜드 회사의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그림을 주면 패터너는 먼저 광목 같은 천으로 마네킹을 이용해 입체 재단을 합니다. 모두 수작업이지요. 그 패턴 첫 샘플을 디자이너와 함께 가봉을 하고, 브랜드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몇 차례에 걸쳐 그 견본 샘플을 수정해 나갑니다. 그 다음에 완성된 샘플을 그레이딩(사이즈별로 작업)해서 마지막으로 정밀하게 그 작업한 것들을 전산화시키는 것이지요. 전산 작업된 것은 각 제조업체로 넘겨지면 그때 새로운 의상의 완제품이 생산됩니다."

어떤 브랜드 제품들을 주로 작업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현재 저는 발렌시아가 제품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현재 열다섯명 정도의 패터너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요. 파리에서는 아주 큰 규모입니다.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 수영복, 란제리 등의 패턴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브랜드는 우선 떠오르는 대로 말씀드리자면, 디오르, 존 갈리아노, 라코스테, 지방시, 쿠카이, 모간, 루이비통, 니나리찌, 소니아 리켈 그리고 발렌시아가 등이 있습니다."

지금 하는 작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물었다. "얼마 전 발렌시아가 패션쇼에 나왔던 작품들을 제품으로 완성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패션쇼에 출품된 작품을 제품화하는 일은 여기서도 드문 일이에요. 그쪽 회사의 디자이너들과 끊임없는 수정작업을 하느라 거의 녹초가 될 정도로 일을 하고 있지만 무척 즐겁습니다. 패턴전문회사가 패션 브랜드의 기획실과 제조업체 사이에서 중개역할을 하는 회사라고 보면 되듯이 패터너들은 디자이너와 쿠튀리에르(재봉사) 사이에서 중개 작업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고급맞춤의상) 프레 타 포르테(pret-a-porter, 고급기성복)라는 말이 이야기 도중에 계속 나왔다. 1990년 영남이공대 의상과를 졸업하고 국내의 패션회사에서 디자인실에 근무하다가 1995년 프랑스로 유학을 왔다. 의상전문학교인 ES Mod를 1998년 수료하고 2002년까지 파리의 한 프레 타 포르테에 근무하다가 지금의 회사로 왔다고 했다. 1998년 결혼한 남편 다미앙과의 사이에 2년 6개월 된 귀여운 딸 조엘을 두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처음엔 파리에서 제 이름을 딴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 꿈이 힘든 유학생활을 견디게 해주었지요. 하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에도 100% 만족하고 있습니다. 동료들과도 즐겁게 지내고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 꿈에 더욱 더 다가갈 수 있는 이 일이 저는 즐겁습니다. 먼 장래엔 웨딩드레스뿐만 아니라 제 이름을 내세운 란제리도 만들고 싶어요." 평소에도 유창한 불어로 내가 처한 난제(難題)들을 모조리 해결해 주던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열정적으로 말했다. 파리 여성들이 검은 색 의상을 많이 입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파리지엔들이 검은 색을 선호하는데 올해 더 그런 것 같네요.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스타일의 패션도 당분간 계속되는 것 같고요."

바스티유광장 쪽에 위치한 Prototextile사의 그녀 동료들은 모두 친절했다. 퇴근 무렵에 맞추어 그녀가 예매해 준 런던행 유로스타 티켓을 받기 위해 들어섰을 때였다. 환한 표정의 패터너들이 마네킹과 옷들이 즐비하게 걸린 저마다의 작업장에서 살짝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봉수아! 정교한 의상 패턴들이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마다 마치 복잡한 설계도처럼 그려져 깜빡거리고 있었다.

▨ 바로잡습니다=2009년 1월 31일자 '파리 한국문화원 이정근(39세)씨의 기사에 큰 오류가 있었습니다. 현재 파리문화원에서 아트 디렉터가 아니라 외부 그라피스트로 5회째 'Culture Coreenne'를 편집하고 있으며, 파리에서 현재 13년째 체류 중입니다. 특히 2004년 하반기 중국 전시용으로 촬영한 오르세 대형 사진은 외부광고용으로는 사용되지 않았음을 밝혀 왔습니다. 필자의 오류로 이정근씨와 파리한국문화원 측에 끼친 심려에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약력

1969년 대구 출생

1990년 영남이공대 의상과 졸업

1994년 패션클럽, 지클런 디자인실 근무

1995년 -1998년 파리 패션 전문학교 ES Mod 수료

1998년- 2002년 프레 타 포르테(pret-a-porter) 크리스천 라끄르와 근무

2002년-현재 파리 패턴전문회사 Prototextile사 디자인 및 패터너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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