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당기면 경제가 산다?…'서머타임' 찬반 논란

입력 2009-02-28 06:00:00

정부가 여름철에 표준 시간을 1시간 앞당기는 서머타임제를 다시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지난 16일 20년여 만에 서머타임(일광절약시간제) 재도입을 밝히면서 서머타임의 효용성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찬성하는 재계 입장은 세계적인 추세인데다가 내수진작 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 반면 반대 측은 에너지 절감 효과도 없고, 오히려 근로시간 연장 등 노동여건만 악화될 뿐이며 현재와 같은 불황 속에서 외식·문화·레저산업의 진작을 통한 내수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일단 정부는 서머타임제 조기 도입을 위해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검토에 들어가기로 했고, 이르면 내년 5월부터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서머타임은 필요하다

지난 16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녹색성장위원회에서 정부는 서머타임 추진을 밝혔다. 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뒤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가 밝힌 추진 배경으로는 74개국에서 시행할 정도로 세계적 추세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0개국 중 한국과 일본, 백야 현상으로 서머타임제가 필요 없는 아이슬란드만이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

서머타임제는 이미 2007년부터 다시 논란거리가 됐다. 그해 6월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서머타임제 시행을 정부에 강력 요구했다. 선거(대통령선거·총선)를 앞두고 기업을 의식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당시에도 국회와 재계는 제도 시행을 찬성, 노동계는 반대했다. 재계의 논리는 내수 활성화와 고유가. 낮시간 활동시간이 늘면 많이 쓰고 먹고 놀러다녀서 당시만 해도 회복 국면을 말하던 소비를 확실히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전경련은 '서머타임제의 조기 도입에 관한 경제계 건의'를 발표했다. 에너지 부문에서 총 전력 소비량의 0.3%(860억원)가 줄어드는 것으로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추산했다. 가정용 조명 8.1%에 사무실 냉방전력 2.5%가 절감된다는 것. 비에너지 부문에서는 생활스포츠 활성화와 문화산업 소비, 쇼핑 증가 등으로 2조2천억원의 경기 진작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생산유발 효과 1조2천900억원과 소비유발 효과 8천628억원을 보탠 수치. 이 밖에 향락성 소비와 야간 범죄, 교통사고 감소 등의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전경련 관광산업특별위원회와 일본 게이단렌 소속 관광위원회는 양국 관광교류 활성화를 위한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서머타임제 한·일 공동 실시를 추진했다. 이미 일본에선 자민, 민주, 공명, 국민신당 등 초당파 국회의원 250여명으로 구성된 '서머타임제도추진의원연맹'이 2010년부터 서머타임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입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고유가가 서머타임 도입의 근거로 작용했다. 이병욱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된 상황에서 이제 서머타임제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에너지 절감을 위해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도 "서머타임제는 국민의 컨센서스가 있으면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식경제부는 2007년 유가 기준으로 6개월간 서머타임제를 실시하면 9천170만달러의 원유 도입가 절감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서머타임에 찬성하는 측은 '노동 착취 우려와 중고생이나 학부형의 어려움' 등에 대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날이 아직 훤한데 (눈치가 보여서) 퇴근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현 노사관계를 볼 때 대가 없는 초과근무를 강요할 기업주도 없고 강요당할 노동계도 아니라는 것. 한 언론사는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학생들은 지금도 밤낮이 따로 없으니 그들을 핑계 삼을 일도 아니다"며 "전반적인 교육 여건이 바뀌어야지 서머타임을 탓할 일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서머타임은 필요없다

반대 측 주장의 근거도 2007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2007년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에너지경제연구원, 교통연구원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등 4개 기관이 정부 요청으로 작성한 '서머타임 도입의 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에너지 절감효과가 전력 사용량의 0.3%(800억~900억원) 정도로 나와있는데 기대치에 비해 크게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 게다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 것을 우려하던 때와 달리 배럴당 30~40달러선인 현재 에너지 절감을 운운하는 것은 뚜렷한 근거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오히려 에너지 소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정부의 서머타임 도입 발표 이후, 한국노총 측은 미국 인디애나주를 예로 들며 반박했다. 인디애나는 각 지역(카운티)별로 서머타임제가 시행되다 2006년 주정부에 의해 주내 모든 지역이 서머타임제를 적용받은 곳. 낮시간 조명 비용은 줄었지만 냉방비가 늘면서 오히려 전기 소모는 0.98% 늘었다는 내용이다.

노동계는 또 서머타임 도입으로 야근 근로자와 비정규직, 화이트칼라 등의 근로시간 연장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재계 주장과는 달리 노동 조건이 더욱 열악해질 수 있다는 것. 한국노총측은 "정부는 녹색성장을 들먹이면서 서머타임 도입을 얘기하지만 결과적으로 노동 시간 연장 의도가 깔려 있다"며 "실효성도 없고 인체 리듬을 교란해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서머타임 논란이 벌어졌을 때에도 노동계 반대의 핵심 논리는 상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비춰볼 때 서머타임은 근무시간 연장이 될 뿐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민주노총측은 "해가 훤하게 떠 있는데 배짱 좋게 퇴근할 부하직원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했다.

부정적인 여론도 상당수다. 에너지관리공단이 2006년 7월과 10월, 1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서머타임 실시 반대 의견은 30~32%선. 찬성 의견 46~50%선보다 낮았지만 정부가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스런 반대 수치다. 아울러 두 차례나 도입됐다가 결국 국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정책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88서울올림픽 때 서머타임제를 실시한 것은 스포츠 중계시간대를 선진국에 맞추려던 의도도 있었고, 경제효과를 운운했지만 올림픽 끝난 뒤 이를 폐지한 점으로 미뤄볼 때 실익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

서머타임 이후에도 상사 눈치를 보지 않고 정시 퇴근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2007년도 전경련이 내놓은 '서머타임제의 조기 도입에 관한 경제계 건의' 보고서를 보면, '퇴근 후 일광시간이 늘어날 경우 TV시청, 수면 등의 소극적 여가활동에서 벗어나 스포츠, 관광, 영화, 연극 등 적극적 여가활동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현재처럼 불황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 회오리가 몰아치는 와중에 과연 여유시간이 생겼다고 외식·문화·레저활동이 늘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 서머타임(일광시간절약제)은?

미국은 '데이라이트 세이빙 타임'(daylight saving time), 영국은 '서머 타임'(summer time)이라고 부른다. 낮이 긴 봄부터 가을까지(4~10월, 북반구 기준) 7개월여 동안 하루 일과를 빨리 시작하고 빨리 마감할 수 있도록 시계를 1시간 앞당기는 제도. 1784년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 양초 절약 방안으로 주장했지만 시행되지 못하다가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1915년) 때 처음 도입한 뒤 1916년 영국, 1918년 미국 등 현재 세계 74개국(전경련 보고서, 2007)에 따르면 2006년 기준 86개국 시행)이 시행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에선 한국, 일본, 아이슬란드만 채택하지 않고 있으나 북극에 가까워 백야 현상이 나타나는 아이슬란드는 아무 의미도 없으므로 실제는 한국과 일본만 시행하지 않는 셈. 우리나라는 1948~1960년(1952~1954년 제외) 10년간 서머타임제를 실시하다가 중단했다. 1961년 여론조서 결과, 한국인 생리에 맞지 않고 국제적 시간계산 불편 등의 반대 의견이 나왔다.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1987, 1988년 2년간 재실시됐지만 신체리듬의 부적응, 근무시간 연장 등의 문제가 제기된데다 외국 TV 방영시간에 맞추기 위한 올림픽용이라는 국민적 거부감 때문에 1989년 폐지됐다가 2005년부터 '표준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재논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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