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경인] 美 오크릿지 국립연구소 이호녕 박사

입력 2009-02-27 06:00:00

▲ 이호녕 박사가 노트북을 꺼내 박막성장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 이호녕 박사가 노트북을 꺼내 박막성장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안 해서 문제지, 하면 된다."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 오크릿지 국립연구소 이호녕(42) 박사의 말이다. 평범한 점퍼에 큼직한 가방을 들고 현대 EF 쏘나타를 타고 나타난 그는 이마에 이미 과학자라고 쓰여 있었다 세속의 가치와는 담을 쌓은 물리학자의 모습이다.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과학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지만, 사실 인류는 과학의 힘으로 문명을 일궈가고 있다. 문명의 이기를 한껏 누리면서도 그 속에서 묵묵하게 연구하는 이들의 노고를 잊기 쉽다.

그는 2007년 11월 미국 '젊은 과학자 대통령상'(Presidential Early Career Awards for Scientists and Engineers:PECASE)을 수상했다. 미국 내 젊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에게 수여되는 상 중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석학들도 받기 힘들다는 미국 행정부 최고권위상이다. 당시 백악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많은 미국 과학자들 사이에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환하게 웃는 모습이 외신으로 타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구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다시 미국으로, 오로지 연구를 위해 매진한 대구 사나이의 쾌거였다.

"저는 원래 공부를 잘 못했어요. 그런데 물리는 재미있었습니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죠. 원인에 대한 답이 있는 틀림없이 있는, 정직한 학문입니다." 남들은 다 어렵다는 물리가 그는 가장 쉬웠다고 한다.

경북 의성에서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영남대 물리학과 86학번이다. 그는 도전과 성취를 즐기는 성격이다. 영남대 이과대 산악부에서 활동한 산 사나이다. "산은 올라갈수록 끝이 없습니다. 산에서 인생을 깨우치고 저의 한계도 맛보았습니다." 오대산에서 설악산까지 1주일 동안 사람의 그림자도 없는 산길을 헤쳐가기도 했고, 암벽 등반도 즐겼다. 막노동을 해서 등반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고, 대구 두류공원에서 매일 하프 마라톤으로 체력을 쌓기도 했다.

"산을 올랐을 때의 성취감은 어려운 물리 문제를 풀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그는 '인생이 도전'이라고 했다. 도서관에서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책에 파묻힐 수 있었던 것도 산이 준 인내의 교훈이었다. 학교를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학교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1997년 같은 과 후배인 김현숙씨와 결혼하고 알프스 북벽으로 10일간 신혼 배낭여행을 다녀올 정도였다.

그는 "열심히 한 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도 두달에 한 편씩 논문을 발표했다. 2년 반 동안 총 12편의 논문을 썼다. 남들은 평생을 해도 못할 일이다. 새벽 6시에 어김없이 연구소에 출근했다. "남보다 배를 더 해야 경쟁이 됩니다."

발표한 논문의 수도 그렇지만 과학자의 성과는 논문의 인용횟수다. 그의 논문은 이제까지 총 1천여회 인용됐다. 그만큼 전 세계에서 추진되는 많은 연구에 기초가 된다는 얘기다.

그의 박막 성장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사이언스(2002년), 네이처(2005년)에 보고되는 등 주목을 받았다. "레고를 쌓는 것과 비슷하죠." 산화물을 얇은 막(박막)으로 만들어 벽돌을 쌓듯이 한층씩 격자로 쌓아 인공신물질을 만드는 기술이다. 언뜻 들어보면 대단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이 층이 머리카락 1천분의 1의 두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세한 박막을 수천개나 쌓는 초미세 나노기술이다. 메모리 기억소자에 응용돼 하드디스크나 램을 보다 작게 만들 수 있게 된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한국의 물리학계는 소위 명문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편이다. 지방대 출신으로서 뚜렷한 한계를 느꼈다. 순수한 연구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국내 박사로는 비전도 없었다. 몸뚱이 하나 믿고 그는 독일로 떠났다. 연구의 성과로 사람을 평가하는 독일의 방식이 그에게는 더 어울렸다. 밤낮 없는 연구를 통해 막스플랑크 연구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이언스지에 논문이 게재되는 영예도 누렸다.

독일 박사후 연구원 시절에는 화장실이나 식당에 걸어가는 동안에도 논문을 읽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의문점이 생겨 관련 자료를 찾다 보면 끼니를 거르는 일도 허다했다. 이러한 연구가 바탕이 되어 2002년 미국 오크릿지 연구소에 전략채용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원으로 임용됐다. 오크릿지는 에너지관련 물질을 주로 연구하는 곳이다. 직원 4천명 중에서 1천여명이 박사인 브레인 탱크다. 지난해부터 포항공대 물리학과 겸직교수도 맡고 있다.

"넘어온 산도 많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걸어오지 않은 눈길을 헤쳐 왔다. 이제 눈으로 뭉쳐진 신발을 터는 느낌이다. 대구에서 출발한 과학자의 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다"는 그에게 목표를 물어보았다. "글쎄요.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끝까지 가고 싶습니다."

녹스빌에서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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