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록…정직하고 명확해야죠"
요즘 청소년들이 휴대전화를 갖고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듯 1950년대 초반 중학교 때부터 카메라와 인연을 맺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계명문화대학 사진영상학과 장진필(73) 명예교수. 그는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장을 좇는 현역 사진작가이다. 까까머리 시절 취미로 만지작거린 카메라는 그에게 평생의 업이 됐으며 현재까지도 동반자이다.
"사진은 기록입니다. 그 때문에 그만큼 정직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사진의 매력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짧은 말이지만 사진에 대한 노작가의 열정이 묻어나고 녹록치 않은 세월 카메라와 함께 한 삶이 농축돼 있다.
하지만 사진과의 본격적인 인연은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65년 계성고 미술교사가 된 28세 이후부터다. 교내에 암실이 마련돼 있어 동료 교사였던 김태한(작고, 전 부산 경성대 사진과 교수)씨와 함께 사진을 연구하며 학생들과 동아리활동을 시작하면서 부터다.
"당시의 제자들이 현재 각 대학 사진과 교수로 재직하거나 신문사 사진부장을 하고 있죠." 68년엔 강상규, 신태래씨와 함께 대구 YMCA에서 사진동아리 '광학회'를 결성했다. 광학회는 이후 대구의 여러 사진협회 결성의 전초가 됐다. 여행을 좋아했던 장 교수에게 이 시기는 그림 소재도 찾고 사진도 찍을 겸 동호인들과 출사도 자주 다니던 때였다.
1970년 매일신문 어린이사진전 금상, 71년 대한민국 건축사진대전 은상을 받으면서 그는 사진에 대해 자신감을 얻게 된다. 이어 75년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사진부문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면서 그에게는 '사진작가'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
"아마 70년대 초반부터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사이 그는 69년에 원로 사진작가들이 강사진을 이룬 대구월산예술학원에서 사진 강의를 들었으며 70년대 초엔 예림사진학원이 생기면서 신형국 김태한 정인성(작고)씨 등과 함께 강의하기도 했다. 예림사진학원은 재정적인 이유로 몇년 가지 못했으나 그 때 강사진이 결성한 '햇살회'는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한창 산 사진을 많이 찍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번은 설악산 노루목 지역에 혼자 갔다가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오도 가도 못할 때 인근 주민이 준 설피로 겨우 빠져나왔죠." 그는 그 때 설피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히말라야 원정을 위한 훈련 중에 설악산 고요의 계곡을 혼자 오르다 곰 발자국을 보고 등골이 오싹했던 경험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에베레스트 산을 4천800m까지 올라 고산병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사진영상과 교수가 된 첫 번째 사람이다. 그의 학위논문 '사진예술과 회화와의 연관에서 본 사적 고찰'은 사진관련 논문 1호다. 이 논문은 이후 많은 사진 전공자들에게 학문적인 가이드가 됐다.
"제가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미술과 사진을 비교할 수 있는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78년 계명문화대학 시각디자인과 사진학 담당 전임교수가 됐고 82년엔 이 대학에 전국에서는 4번째, 대구에선 처음으로 정규 교육과정을 갖춘 사진영상과를 만들었다. 또 72년 대구백화점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그는 모두 21번의 전시회를 가졌다. 사진작가로서는 우리나라 최다기록이다. 오는 3월 그는 22번째 전시회를 연다. 작품은 한국의 자연과 전통시장, 행사, 풍속을 담은 생활상들이다.
"작가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마구 찍어서 그 중 1장을 골라내는 건 의미가 없죠. 한 컷을 찍더라도 사전에 심혈을 기울여 찍은 사진이라야 진정한 작품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에 따르면 요즘 흔한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도 셔터만 누르고 그냥 현상소에 맡겨 빼내는 사진은 아이를 낳고 양육은 하지 않는 몹쓸 부모나 다름없다. 컴퓨터 작업을 통해 하나에서 열까지 자신의 손으로 한 장의 사진을 빼냈을 때가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사진을 있는 그대로 찍는 시절은 갔죠. 예술작품이 되려면 사진 속에 작가의 생각과 재구성이 들어가야 하는 거죠." 그래서 퇴임(2002년) 후 그는 포토아트(Photo Art)에 관심을 갖고 2005년 '한국사진이미지아티스트'란 회를 창립했다. 포토샵 기능을 적용해 사진 속 영상을 임의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새로운 영상미를 구가해보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보도 기자는 아니지만 사회적 이슈 현장을 찾아 몸으로 부딪치며 현장감 넘치는 작품을 담아낸다. 포토샵을 이용, 경복궁 향원정을 좌우 대칭시킨 작품이나 시국현장에서의 함성이 그대로 들려오는 듯한 작품은 2차원적 평면에 3차원적인 삶을 담아내는 그만의 노하우를 선보이기도 했다.
1976년 대구와 부산을 중심으로 그가 창립한 영남사진학회는 현대사진영상학회로, 86년 결성한 한국사진교육학회는 전국규모의 한국사진학회로 발전, 사진발전과 후배양성의 기수가 되고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