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 재창조] (20)도심에 순종 어가길 의미를 심자

입력 2009-02-26 06:00:00

▲ 달성공원에서 바라본 순종어가길.1909년 1월 순종의 달성 방문소식이 전해지자 박중양은 하룻밤새 가옥을 부수고 길을 만들었다.
▲ 달성공원에서 바라본 순종어가길.1909년 1월 순종의 달성 방문소식이 전해지자 박중양은 하룻밤새 가옥을 부수고 길을 만들었다.

1909년 대한제국의 신년 하례식.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천황처럼 조선의 왕이 지방을 순행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에게 제안했다. 히로부미는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 천황이 지방을 순행하고, 황실 결혼식이나 신사, 궁성 등의 의례를 만들어 일본 국민에게 국가의 힘을 알려 단결시킨 사례를 들어 조선에 일본의 관행을 권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해 1월 7일 순종은 대구를 최초로 방문했다. 오후 3시 24분 대구역에 도착한 순종은 대구의 첫 신작로인 북성로를 가마를 타고 지났다. 시민들은 두 손에 일본 국기를 들고 흔들었다. 순종은 지역 문·무관, 군수, 학생, 주민들이 봉영한 가운데 황제의 행재소인 경상감영에 도착했다. 그 길은 이후 사람들에게 '어행길' '황제의 길'로 불렸다.

닷새가 지난 12일 오전 8시 40분 마산을 출발한 순종은 다시 대구를 찾았다. 전날인 11일 밤 관찰사였던 박중양은 순종이 다시 대구를 찾아 달성공원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에 군대를 소집했다. 감영에서 달성까지는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구 지도를 펼친 박중양은 백묵을 들고 감영에서 달성까지 이어지는 줄을 그었다. 그리고 군대는 하룻밤 동안 새 길을 내는데 거슬리는 모든 가옥을 부숴버렸다. 날이 새고 새 길이 생겼다. '대구물어'에는 '한국이 아니면 볼 수 없었던 일'로 기록돼 있을 정도로 길은 말끔했다.

순종은 지방 순행 직전 이렇게 밝혔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밤낮으로 위태로운 나라 형편을 안정시키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생활을 구원하자는 일념뿐이다. 하지만 지방의 소란은 안정되지 않고 백성들의 곤란은 끝이 없어 가슴이 아프다. 직접 지방의 형편과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보려 한다. 너희 대소 신민들은 그리 알라."(조선왕조실록 권3. 순종2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전쟁이 아닌 때에 궁문 밖을 나왔다. 왕조의 관행을 깨고 일본을 따른 대사건이었다. '민심 안정' '지방 순시'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일본의 권유에 의해 이뤄진 굴욕적인 행차였다. 지금 누가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중에 이뤄진 순종의 전국 최초 순행길. 이 길은 황제의 첫 대구 방문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품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마지막 황제가 대구를 방문해 도심의 골목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로부터 딱 100년이 지났다. 순종 어가길을 복원해 대구 도심 재창조의 힘으로 부활시키고 관광자원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순종 어가길의 재현이 필요한 이유

도심 속 역사는 인체에 비유하자면 뼈와 같다. 역사라는 골격이 지탱되어야만 도심 속에 경제와 문화가 덧입혀지고 혈관처럼 사람들이 드나든다. 역사는 곧 도심의 정체성이다. 대구 중구청이 지난달 발표한 '순종 황제 어가길 역사적 고증과 활용방안 연구' 용역 결과는 그래서 그 의미가 크다.

대구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3년 세계에너지총회 등 굵직굵직한 국제행사를 유치했다. 세계인들의 시선이 대구에 집중되고 있지만 대구를 세계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역사는 도심 속에 잠들어 있을 뿐이다. 발굴, 복원해 알려야 한다는 순종 어가길의 가능성은 그래서 크다.

용역을 맡은 김호동 영남대 독도연구소 교수는 "대구시의 도심재창조 사업에서 역사·문화의 발굴, 복원은 대구의 이미지를 만들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기본 조건"이라며 "순종 어가길을 복원하면 도심 속에서 역사, 문화, 관광을 한데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것이며 떠나가고 버려진 대구역, 북성로 일대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순종 어가길 복원은 당시를 재현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토 히로부미가 제안해 황제가 받아들인 '굴종의 길'을 왜 복원하는지에 대한 반대의견이 적잖다. 순종의 대구 방문 당시 대구역이 자리했던 시민회관 인근과 북성로 골목길이 퇴색된 채 버려져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하지만 순종 어가길 복원은 역사의 진실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어가길 일대 권역 정비도 이뤄낼 수 있다. 방치된 유적이나 표석을 정비하고, 미니어처를 골목 곳곳에 만들고 폐허를 방불케 하는 시민회관 지하차도를 역사박물관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면 일대를 되살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순종이 탔고 이동했던 노천 가마의 부활, 전통 윷판, 놀이판 등 전통놀이 체험, 인력거, 마차, 자건거 등을 통해 순종 어가길을 탐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타 시·도에서는 볼 수 없는 유일한 '황제의 길' 체험도 만들 수 있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일제 식민지 시절 황제의 대구 첫 방문을 역사·문화적인 시각에서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발굴해 알릴 필요성이 크다"며 "순종 어가길 체험이 이뤄지면 도심의 여러 축제와 연계해 즐기면서도 배우고 역사를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크 투어리즘도 도심 재창조의 힘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비극적이거나 잔인한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나 그 사건과 관련이 있는 장소를 여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 지역의 뼈아픈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교육적인 여행상품이 되고 있으며 유행을 타지 않고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국립국어원은 이를 '역사교훈여행'이라고 이름지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원자폭탄이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에도 다크 투어리즘의 장소가 있다. 원폭 투하로 7만여명이 목숨을 잃은 히로시마에는 혼가와 강과 모토야스 강이 앞으로 흐르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원폭 투하로 철골구조물만 남았던 건물을 보존해 당시의 사진, 인골, 유품을 전시하고 위령비, 원폭 공양탑 등을 만든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다. 일본인들은 이 평화기념관 기념비에 '잘못은 더 이상 저지르지 않겠다'고 새겼다. 원폭 투하 이후 건물을 보존할 것인지, 부술 것인지 놓고 이견이 많았으나 잔인하고 처참했던 역사를 잊지 않고 후대에도 알리기 위해 보존하고 있다. 핵무기 폐기와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장소로 전세계인들이 찾는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은 1996년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장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100만명의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현장이지만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가스실, 고문실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이스라엘인은 물론 세계인들이 찾는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역사를 배운다.

또 수십만명의 양민이 학살된 킬링필드, 9·11 테러가 발생했던 세계무역센터 자리, 포로를 이용해 생체실험을 벌였던 중국 하얼빈의 731부대 유적지, 일본군이 30만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을 추모하는 난징대학살기념관 등도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의 장소가 되고 있다. 인류 역사의 참상이 평화의 상징으로 추모되면서 일대가 관광자원화된 것이다.

순종 황제 어가길 용역 연구책임자인 김재원 영남불교문화연구소 소장은 "순종 어가길은 근대화의 길이자 저항의 길이며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현장으로 대구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라며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저항의 의미를 담아 후대에 올바로 전하기 위해서라도 순종 어가길 복원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재경·서상현기자 사진 이채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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