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老의 삶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블로그 통해 상업적 성공 이끌어
며칠 전 가족들과 함께 '동성아트홀'에서 '워낭소리(Old Partner)'를 봤다. 상영관으로 들어설 때까지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흔들렸다. 봐야 하나, 보지 말아야 하나. 솔직히 소문이 만든 명성을 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나는 눈물이 많다.
영화가 후반부로 흐르고, 그렇게 할아버지를 닮은 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때, 난 결국 콧물을 연방 훌쩍이며, 볼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손끝으로 훔칠 수밖에 없었다. 옆에 앉은 아내가, "당신 우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아니,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라는 그 흔한 농담도 잊은 채. 그렇게 영화는 남자의 눈물로 비참하게 끝을 맺었다.
솔직히 극의 완성도가 높다거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긴 영화는 아니었다. 등장 인물이라고 해 봐야 코믹한 분위기의 '할머니'와 무뚝뚝하고 고집 센 '할아버지', 그리고 그의 분신 같은 '소'뿐이다. 등장인물이 빈약하다 보니 이야깃거리 역시 단순하고 극적 긴장감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어, 벌써 끝난 거야?' 상영시간도 78분으로 짧은 편이다. 그렇다. 이건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다. '실제로 있었던 어떤 사건을 극적인 허구성이 없이 그 전개에 따라 사실적으로 그린 것', 따라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속담에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 버릇이 되어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워낭소리는 '배운 게 농사(아니 어쩌면 '소 부리는 것')밖에 없는 한 村老(촌로'최노인)의 삶에 관한 현장 보고서다. 배운 게 농사밖에 없어서인지 최 노인은 매일 "머리 아파 죽겠다"면서도 소를 끌고 밭으로 향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저 양반 배운 게 농사밖에 없어서 그래요. 어릴 때 머슴살이하면서 배운 게 저거밖에 없어서.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루 종일 일하는 게 몸에 배서 그래요"라고 읊조리던 그의 老婦(노부). 그런 최 노인에게 오랜 동료로서의 우정이란, 결국 '같이 일 하러 나가는 것'뿐이다. 묵묵히, 그것도 죽을 때까지 말이다. 그런 관계로 최 노인은 생명이 채 1년조차 남지 않은 소에게도 평상시와 같이 일을 시킨다. 곧 숨이 넘어갈 듯한, 그렇게 거북이보다 더 느릿느릿하게 걷는 파트너의 등짝에 '돼돼돼!' 하고 가죽 채찍보다 더한 불호령을 던진다. 그 호령은 소뿐만 아니라 자신의 등짝을 향하는 자성의 채찍이자, 격려의 함성이기도 하다.
사랑을 따스함만으로 이해하려 드는 자들이나 동물 애호가들에게, 그 모습은 때론 역겹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새로 사온 소 때문에 우리 밖으로 쫓겨나는 장면, 밥 엎었다고 두드려 맞는 장면, 우시장으로 끌려가는 장면, 생명에 대한 배려보다 질 높은 노동력의 확보로 다가오는 사료와 농약 이야기 등, '생명으로서가 아닌 재산으로서의 소', 그것이 소에 대한 우리의 연민이자 이 영화의 불편함이라면 그다지 태클 걸 생각까진 없다. 하지만 그 연민을 우정, 아니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린 그 둘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최 노인의 말, "이 소하고 나하고 같이 죽을 끼래……. 참 불쌍해요…"는 소의 목에 달린 워낭소리보다 더 깊은 울림이 있다.
사족 같은 이야기지만, 이 영화의 상업적 성공 요인을 딱 하나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블로그와 아고라로 연결된 N세대(Net Generation)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 언론에서 언급되고 있는 '고향과 아버지, 가족에 대한 향수, 경기 불황을 극복하는 희망과 용기'와 같은 평들은 화려한 수사에 불과하다. 돈 탭스콧이 쓴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Grown Up Digital)'라는 책은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인 요즘 세대들에 관한 종합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는 N세대의 특징 중 하나로 '전통 매체에 기반을 둔 대기업의 브랜드 프로모션을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블로그를 통해 스스로 소문을 만들어 전파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워낭소리'의 성공은 감독의 성실한 노력과 이런 N세대의 특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놀라운 성과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우 광 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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