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라뇨? 설거지도 겨우…" '최악의 가뭄' 경북 북부

입력 2009-02-21 06:00:00

땅도 물도 사람도 말라간다. 13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 탓이다. 특히 대구 인근 지역과 경북 북부 동해안 지역을 강타한 가뭄으로 수만여명의 주민들이 생활용수난에 시달리고 있다. 댐과 낙동강을 통해 안정적으로 상수도를 공급받고 있는 도시에서는 큰 불편을 겪지 않지만 계곡 등 지표수를 상수도로 이용하는 농촌 주민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12일 대구·경북 지역에서 가장 가뭄 피해가 극심한 영덕군의 가뭄 피해 현장을 찾아가 말라붙은 땅과 주민들을 살펴봤다.

◆말라버린 강="이대로 계속 수위가 낮아지면 한 달도 버티기 힘들 겁니다." 영덕취수장 관계자가 마른 강바닥을 가리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덕군 내 7천900여 가구에 물을 공급하는 오십천은 배를 뒤집은 물고기처럼 허연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12일 오후 경북 영덕군 영덕읍 영덕취수장. 오십천 일대는 억새와 마른 잡초만 무성했고, 강바닥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밭으로 변해 있었다. 먼지를 풀풀 날리며 차들이 오십천을 건넜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맑은 물이 흐르던 길. 취수 관정에서 50여m 떨어진 상류에 커다란 물웅덩이가 눈에 띄었다. 수위가 1m도 되지 않아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 평소 수위 4.5m를 유지하던 곳이다. 영덕군은 영덕, 남정, 지품, 영해, 병곡 등 5개 취수원에서 하루 2만5천900t의 물을 공급한다.

그러나 지난달 14일부터 1천300여 가구에 물을 공급하는 남정정수장이 고갈돼 가동을 멈췄다. 보조취수장을 가동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수위가 계속 내려가면서 앞으로 한 달도 버티기 힘든 상황. 취수원 하류에는 강널말뚝(시트파일·토목·건축 공사에서 물막이·흙막이 등을 위해 박는 강판으로 된 말뚝)을 13~16m 깊이로 박아 물이 흘러가지 못하게 막고 있지만 임시 조치일 뿐이다. 영덕읍으로 들어오는 오십천 하류는 꽤 많은 물이 흐르고 있지만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있기 때문에 식수로 쓸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덕지역은 지난 11일부터 일부 읍·면을 대상으로 제한급수에 들어간 상태다.

전체 9개 읍·면 중 영덕읍과 강구면, 남정면 등 3개 읍·면은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수돗물 공급이 중단됐다. 불편을 겪는 주민의 수가 9천188가구, 2만2천170명에 이른다. 앞으로 비가 계속 내리지 않는다면 하루 5시간 제한급수를 할 계획. 특히 3월에도 큰 비가 오지 않으면 하루 10시간 제한급수를 하는 3단계 조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영덕군 상하수도사업소 관계자는 "보조취수장을 가동해 버티고 있지만 수위가 계속 내려가면서 앞으로 35일 정도밖에 버틸 수 없다"며 "50㎜는 와야 취수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타는 주민들= 주민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덕군 내에서도 가뭄 피해가 가장 크다는 창수면 보림리를 찾았다. 마을 인근 계곡 상류에서 물을 취수해 공급하는 이 마을은 지난해 가을부터 물 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10~20가구의 소규모 농촌 마을인 데다 상수도로 대부분 지표수를 이용하기 때문에 가뭄만 오면 물이 마른다는 것. 마을 간이상수도의 배수탱크는 500t 미만의 소규모라 물을 많이 저장하기도 힘들다.

40일 전부터는 매일 오전 5시 30분과 오후 7시가 되면 20~30분간 급수를 한 뒤 간이상수도를 틀어막는다. 약간의 비가 왔고, 날씨가 풀리면서 얼음이 녹아 사정은 나아졌지만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세수는 고사하고 겨우 밥만 해먹고 산다"며 하소연을 했다. 주민 임태순(61·여)씨는 "오전에 물이 나오면 통에 모아뒀다가 조금씩 덜어 쓴다"며 "설거지도 대접 3곳에 물을 담은 뒤 헹궈서 하는 형편"이라고 했다. 마을회관과 가까운 남자경(70·여)씨의 집에 들어갔다. 남씨의 집 화장실에는 커다란 푸른색 물통에 물이 찰랑찰랑 담겨 있었다. 이날 오전 받아둔 물이다. 남씨는 "이번 설 명절에는 아예 자식들에게 오지 말라 했다"고 털어놨다. 수세식화장실에 쓸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손자들이 불편해할 것을 염려해서다. 남씨는 "여러번 용변을 본 후에야 변기에 물을 조금씩 부어 내린다"며 "재래식 화장실은 사정이 낫지만 정화조 처리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웃에게도 쉽게 쓰자 소리를 못한다"고 푸념했다. 주민들은 빨래도 세탁기는 고사하고 보름에 한 번씩 말라붙은 개천에 나가 고인 물에 한다고 했다. "반찬도 국처럼 물이 많이 필요한 음식은 거의 안해요. 그저 된장찌개에 마른 반찬만 먹어요. 도회지에서는 물을 펑펑 쓰죠? 여기는 물 한 방울도 아까워서 벌벌 떨어요."

물부족이 계속되다 보니 마을에서도 최근 지하 200m 깊이로 지하수 관정을 뚫었다. 하지만 아직 찌꺼기가 많이 올라오는 데다 수질검사를 받지 못해 식수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하수를 쓸 수 있으려면 최소한 한 달은 더 있어야 한다는 것. 강신교(65) 이장은 "평생 이 마을에만 살아왔지만 올해처럼 심한 가뭄은 처음"이라며 "비가 빨리 내려야 파종을 하고 농사를 지을 텐데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말랐나=경북지역의 강수량은 예년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형편이다. 올 들어 18일까지 경북 지역에 내린 비는 15.6㎜로 지난해 같은 기간(61.8㎜)의 25.2%에 불과하다. 평년(41.1㎜)에 비해서도 38%밖에 안 된다. 물이 바닥을 드러낸 데는 지난해부터 물 부족에 시달린 탓도 크다. 2008년 한 해 강수량은 847㎜로 평년 1천275㎜ 대비, 66% 수준에 그쳤던 것. 지난 13일 모처럼 단비가 내렸지만 갈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2만여 주민이 제한급수를 받고 있는 경북 영덕의 강수량은 0.5㎜에 불과했고, 청도 19㎜, 봉화 12.8㎜, 영천 12.1㎜, 상주 11.5㎜, 경산 10.2㎜ 등 도내 평균 6.7㎜에 그쳤다.

상수원이 고갈되면서 식수와 생활용수가 부족해 고통받는 주민들의 수도 늘고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18일 현재 운반 및 제한급수에 의존하고 있는 주민은 181개 마을, 3만1천239명(1만3천512가구)이나 된다. 이 중 78개 마을(4천534명)이 급수차나 소방차 등으로 물을 공급받고 있고, 103개 마을(2만6천705명)은 제한급수를 받고 있다. 마른 하늘이 계속된다면 피해는 더 커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이달 말까지 비가 오지 않는다면 경북도 내 소규모 수도시설 4천564곳 가운데 2.1%인 94곳의 물이 마를 전망인 것. 다음달까지 가뭄이 이어지면 116곳(2.5%)의 수원이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이 더욱 염려하는 것은 마실 물보다 농업용 물 부족이다. 경북도 내 저수지 5천581곳의 저수율은 평균 63.9%로 지난해 같은 기간 89.1%보다 무려 25.2%p나 낮고 평년의 81.4%에도 크게 못 미친다. 주요 댐도 사정은 마찬가지. 안동댐은 30.7%로 지난해 53.9%보다 크게 낮고 임하댐은 27.2%로 지난해(46.5%)와 평년(37.7%)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형편. 영천댐은 저수율이 23.6%에 불과하고 성주댐(35.9%)과 운문댐(35.2%), 경천댐(69.5%)도 지난해보다 20∼60%p 떨어진 상태다. 경북도 관계자는 "관정을 개발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며 "40~60m 깊이로 개발하는 일반관정에서 지하 150m 이상으로 파 내려가는 심정 관정을 개발하고 마을 상수도를 광역화하거나 지방상수도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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