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백수' 학사모의 취업 굴욕

입력 2009-02-19 09:57:59

"학사모 쓰고 기념사진은 찍지만…."

17일 오전 11시 30분쯤 학위 수여식이 열린 대구의 한 대학 캠퍼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학부모들 표정 또한 어둡기만 했다. 꽤 많은 졸업생들이 가족, 친구들과 기념촬영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날 이 대학 도서관은 빈 자리 찾기가 어려웠다. 도서관에서 만난 공대 졸업생 김모(28)씨는 "졸업식은 했으나 취직을 하지 못해 부모님께는 연락하지도 않았다. 과 동기 30여명 중에 정규직에 취직한 사람은 3명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졸업과 동시에 백수(?)=영광스런 대학 졸업장이 '실직 증명서'로 변해버린 시대다. 20일 졸업하는 모 대학 김모(28·사회대)씨는 당분간 집 주변 도서관에서 지낼 계획이다. 학교는 너무 멀어 교통비와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데다 "어디에 취직했느냐"고 묻는 후배들을 마주칠까봐 피하기로 했다. 학점도 높은 편이고 토익 성적도 850점을 넘어 "너 정도면 취직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들어온 김씨. 그러나 수십군데 원서를 넣어봤지만 연락조차 받은 곳이 없다. 김씨는 "준비만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취업 현장에 뛰어들고 보니 큰 착각이었다"고 말했다.

'백수'가 되느니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유급을 선택하는 졸업예정자들까지 나오고 있다. 모 대학 4학년인 이모(23·여)씨는 졸업을 한 학기 뒤로 늦췄다. 수십곳의 기업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아직 취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채용 때 졸업자보다 졸업예정자가 더 유리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졸업을 미루기 위해 지난 학기 때 교수님을 찾아가 멀쩡한 과목을 'F'학점 처리해달라고 통사정했다"고 말했다.

◆최악의 백수 시대=통계청의 고용동향에 따르면 1월 실업자는 84만8천명(실업률은 3.6%). 이 중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실업자만 5만5천명에 이른다.

지난해 대구경북지역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통계상으론 65.7%나 된다. 졸업자 3만1천239명 중에 1만8천568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이 중 대기업에 취업한 졸업생은 3천327명으로 전체 졸업자의 10.7% 수준이었고 비정규직도 5천357명이나 됐다. 이 수치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각 대학들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기초로 했기 때문에 체감고용률과 차이가 있다.

지난해 졸업한 김모(29)씨는 "대기업 취업을 포기하고 중소기업에 일단 취업하기로 했지만 그나마도 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며 "좋은 일자리가 생길 때마다 몰래 원서를 쓰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경북대 취업지원실 관계자는 "대기업 경우 올 졸업 대상자를 상반기 때 이미 채용한 상태여서 당장 신입사원 채용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들어오는 일자리는 정부나 행정기관에서 실시하는 10개월짜리 인턴직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꺼리자 정부는 공기업 등 100여개 공공기관의 신입사원 초임을 삭감해 신규채용 인원을 늘리는 극약처방까지 계획하고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나누기를 추진한 뒤 민간분야에 확산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지만, 민간 기업들의 반응은 차갑다. 대구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지역 기업 상당수가 인위적인 구조조정이나 잔업 줄이기, 무급 휴가 등으로 겨우 버티고 있어 신규인력 채용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en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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