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8함 함상 회의실. 윤혁순 함장을 중심으로 10명의 간부가 둘러앉아 해상작전회의를 하고 있다.
당직관으로부터 날씨와 조타실 상황배치 등 일일 상황보고가 있은 다음 곧이어 탁자 위에 펼쳐진 해도를 보며 일본 순시선의 출현 가능 일시와 지점에 대한 분석에 들어간다. 간부들은 지금까지의 데이터와 일본의 동향을 토대로 의견을 개진하며 방어계획을 수립한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영토를 구획하는 경계선도 철조망도 없습니다. 또 지켜야 하는 독도도 보이지 않고,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적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도에는 우리 주민이 엄연히 살고 있고, 국경선은 해도(海圖) 상에도 명확히 그어져 있으며, 일본 순시선은 수시로 모습을 나타냅니다."
보이지 않는 국경선에서,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영토를 지키는 일. 어찌 보면 스스로도 황당한 일이요, 밖에서도 이들이 국토방위의 최전선에 있다고 눈여겨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1508함 윤 함장은 그 모든 것들을 보고 있다. 그리고 이 대치상황이 냉엄한 현실임도 잘 알고 있다.
"아직 한 번도 올라보지 못 했어요." 1508함 승선원들 대부분은 아직 독도에 올라 본 적이 없다. 독도 등대 불빛만이라도 볼 수 있는 날은 차라리 반갑다. 무진장한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독도를 지킨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틴다.
"가끔 독도경비함 승선자들은 독도경비대로, 경비대는 경비함으로 상호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직 독도를 가 본 적은 없습니다. 한 번 가보고 싶죠."
9개월째 경비함을 타고 있는 정기태(23) 수경과 울릉파출소에 근무하다가 한 달 전 함상 근무를 시작한 김영호(23) 수경 역시 독도를 가 본 적이 없다. 제대하기 전에 한 번 가보고 싶지만, 그것은 근무하면서 어쩌다 만나는 '덤'이라고만 생각한다.
정 수경은 계명대 경찰법학과 1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처음에는 멀미 때문에 많이 고생했는데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독도 지킴이'라고 친구들한테 으스대기도 한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정 수경은 학교로 돌아가면 경찰 간부시험을 준비할 생각이다.
김 수경은 이미 이경 시절에 5천t급을 타 본 경험이 있어 함상 생활에는 익숙한 편이다. 1508함도 위성공중전화부터 음료수 자판기는 물론 '노바디' 곡목까지 담긴 노래방시설까지 갖춰져 있어 불편함은 없다. 다만 안전사고가 조금 신경 쓰일 뿐이다. 울산대 철학과 1년을 마치고 입대한 그는 "독도를 수호한다는 자부심에 뿌듯하다"며 신세대답지 않은 의젓한 군인상을 보였다.
한겨울 4~5m를 넘나드는 파도, 칼날 같은 바닷바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눈보라, 심지어 태풍주의보 속에도 바다 한가운데 떠있어야 하는 승무원들, 그들은 스스로의 임무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 바다에서는 물리적인 영토 표시나 가시적인 국경선이 없다.
다만 동서남북을 가늠할 수 없이 들끓는 바닷물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첨단 기계장치의 모니터 속에서는 그 '금'이 바닷물과 함께 뚜렷하다. 단지 기계장치에 그어진 '금'일지라도, 만약 어떤 외부의 것들이 이 '금'을 넘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한 영토 침범인 것이다. 때문에 1508함의 전 승선원은 '내가 뚫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온몸의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다.
이제 영등날이 눈앞이다. 벌써 바람의 신 '영등할매'가 딸을 데리고 오는지 며칠째 바다는 거칠다. 바람은 계통 없이 몰아치고 물결은 리듬 없이 밀고 썬다. 독도 접안장은 파도의 포말로 뒤덮이고 파고(波高) 측정센서 설치대도 반 넘게 바닷물 속에 잠긴다.
오늘 같은 날은 1508함도 기진맥진이다. 밥을 못해 대용식으로 때워야 할지도 모른다. 최전방이면서도 위문편지 한 통 받아본 적이 없지만, 해경 경비함과 함께 그들은 오늘도 이렇게 독도를 지킨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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