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에게도 유전질환 나타나 죄책감"
섬유조직염, 근막통증증후군, 갑상선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는 우순자(46·여)씨는 정부보조금 76만원으로 가계를 이어가는, 두 딸을 둔 여성 가장이다. 두 딸 박지연(가명·22)씨와 주연(20)씨는 우씨에게 '빛'이고 '희망'이다.
세 식구의 보금자리는 보증금 200만원, 월 임대료 4만800원의 영구임대아파트였다. 이곳에서 산 지도 3년째. 그 전에 단칸 월세방을 전전하던 때에 비하면 35㎡(12평) 규모는 대궐이라고 했다.
이웃사랑에 소개되는 여느 이웃들이 그렇듯 이들도 겉으로는 하나같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단지 우씨의 눈이 일반인과 조금 달라 보였을 뿐. 우씨의 오른쪽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왼쪽 눈은 먼 왼쪽을 보고 있는 '사시'였다.
온몸이 모두 아프고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피곤함을 느끼는 섬유조직염, 목이 뻐근하고 뒤통수가 당기는 근막통증증후군, 갑상선 질환 등 우씨를 따라다니는 병들은 세 식구의 밥벌이를 책임져야 할 우씨에겐 사치였다. 드러누워 있을 수만은 없어 하루벌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찾아나선 일자리는 하나같이 녹록잖았다. 일용직으로 일하러 갔던 식당에서 쫓겨나기 일쑤. 손님들은 "왜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다른 데를 보느냐"며 핀잔을 줬고, 식당 주인은 그런 우씨를 오래 두기 힘들어했다.
실은 이 때문에 우씨도 병원을 찾았었다. 사시는 법적으로 장애가 아니었지만 일자리조차 어렵게 만드는 눈은 장애에 가까웠다. 어렵게 찾은 병원에서도 "지금은 때가 늦었다"는 답만 돌아왔다.
그래도 우씨는 정부보조금 76만원에 의존하면 한 달을 딱 맞게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더 큰 문제에 맞닥뜨려야 했다. 2년 전 가을, 고3이던 큰딸 지연씨에게 생긴 염소똥만한 혹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샤워를 마친 지연씨는 "허벅지에 작은 혹이 생겼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혹시나' 하던 엄마는 지연씨를 얼른 병원으로 데려갔다.
'설마, 아닐 거야….' 우씨는 13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 박씨를 퍼뜩 떠올리면서도 '그것만은 제발…'이라고 빌었다고 했다. 하지만 조직검사 끝에 내린 의료진의 결론은 '신경섬유종증'.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단지 유전질환으로만 알려져 있는 병이었다. 고인이 된 남편도 신경섬유종증을 앓다 뇌암으로 세상을 떴기에 우씨는 내려앉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지연씨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왜 하필 나에게…'라는 원망을 수없이 되뇌었다. 이후 2년간 지연씨의 등, 팔, 다리에는 1㎝ 크기의 작은 혹이 오톨도톨하게 났다. 모기에 물린 뒤 부풀어오른 정도의 크기. 혹과 함께 '저승꽃' 같은 얼룩도 피부 군데군데 퍼졌다. 연한 갈색의 피부반점이 증상 중 하나로 나타난 것이었다. 정확한 병의 원인을 의료진도 알지 못했다. 그저 혹이 더 자라지 않도록 억제하는 약을 매일 2알씩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지연씨는 대학에서 2년째 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다만 등록금을 구할 길이 없어 2년간 받은 6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지연씨의 꿈은 어떻게든 월급을 받아 학자금 대출금을 갚고 엄마가 걱정 없이 몸조리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주연씨도 올해 지역의 모 대학 어학계열에 입학했다. 다행히 정부와 대학의 도움으로 첫 학기는 무리 없이 다닐 수 있게 됐다.
우씨의 걱정은 언제나 두 딸에게 닿아 있었다. "건강한 몸을 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의 미래와 꿈마저 오롯하게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며 우씨는 또 한 번 눈시울을 붉혔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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