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추모詩 '아버지 닮으신 어지신 얼굴'

입력 2009-02-17 09:55:54

2009년 2월 16일 오후 6시 12분

당신은 떠나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어깨위에 따뜻이 얹혀 있던

당신의 손길이

홀연 은빛 날개가 되어

푸른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하얀 깃털하나 곱게 남기시어

사랑으로 피어나게 하시고 떠나셨습니다.

그 어지신 얼굴로

"우리 아버지는 참 좋은 분이셨어요."

지상의 아버지를 참 좋으신 분이라 말씀하시던 당신은,

"너 아버지 꼭 빼닮았다"는 말이 참 듣기 좋았노라시던 당신은,

천상의 참 좋으신 아버지를 꼭 빼닮은 아들이기도 하셨지요

당신은 그렇게 하느님 닮게 사셨던 거지요.

"주님 앞에 엎드려 다른 길을 찾았는데

주님은 이 길 밖에 주시지 않았습니다"던

그 길로 당신은 세기를 앞장 서 달리셨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들은 모두 일어나던

아니 있어선 안되는 일들도 모두 일어나던

불행과 격동의 한국사에서

사회정의의 수호자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희망으로

생명의 빵을 나누시며

불어터진 국수 가락을 함께 드시며

"나를 밟고 넘어서라"고 의연히 외치시며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굶주리는 동포들을 위해 일용할 양식의 풍선을

수천수만의 풍선을 띄우고 싶으셨던 당신

이제 당신은 풍선이 되셨습니다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십시오.

김수환 추기경님

이제 당신은 천상 거기에도 계시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사시던

지상 여기에도 그대로 계십니다

당신께서 주고 가신 두 눈으로

밝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이들과

당신께서 밝혀 주신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보며 살아갈 저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항상 사랑하고 용서하라."

이제 당신의 마지막 말씀대로 사는 일만 남았습니다

거기 계시는 것만으로도 빛나시던 당신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소서

당신 같은 성자와 한 시대를 함께 살 수 있었던

행복한 저희들이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기억해 주십시오.

정재숙 소피아 시인(대구가톨릭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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