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상담] 선행학습 꼭 해야 하나요?

입력 2009-02-17 06:00:00

Q: 올해 고2가 되는 학생입니다. 현재로서는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주변 친구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점점 불안해 집니다. 저는 다른 학생들보다는 공부하는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학교 수업을 예습하고 복습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다른 급우들은 방학 동안 2학년 과정을 미리 다 배웠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선행학습을 안 하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떨어지는지 궁금하고 불안합니다.

A: 이스라엘 태생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먼이 연주자로서 성공하게 된 이유를 간단하게 요약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연습'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어서 연습의 양만으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연습은 양과 질이 조화를 이룰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는 반드시 박자를 지키며 천천히 연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이올린이든 피아노든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학생들 대부분은 지나치게 빠른 박자로 연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파가니니의 복잡한 악절처럼 복합적인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뇌는 확실하고 정교한 입력을 요구합니다. 100m 달리기를 하듯이 빠른 속도로 연습하면 뇌는 복잡한 정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나중에 그 정보를 정확하게 손가락으로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느린 박자로 또박또박, 나무에 글자를 새겨 넣듯이 정확하고 정교하게 뇌에 각인해야 어떤 상황에서도 그 정보를 쉽게 재생할 수 있고, 창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기, 운동, 학습 등 어떤 분야에서든 기능과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근원 원리는 같습니다. 처음에 기본기를 천천히 익히며 확실하게 다지지 않으면, 어렵고 복잡한 단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선행학습에 주력하는 학생은 복잡한 악절을 빠른 박자로 연습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도만 빨리 나가는데 중점을 두는 학생은 일시적으로 다른 학생보다 조금 앞설지 모르지만 고3이 되면 결국은 뒤처지게 됩니다. 가장 느린 방법이 가장 빠른 길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서울대 합격자 수만으로 교육성과를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서울대 합격자 수는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올해 대구 지역의 서울대 정시 최초 합격자가 55명에 불과한 결과를 보고, 이제 '수성구식 선행 학습' 관행을 깊이 반성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지역의 인재 양성은 대단히 어려운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어느 과목이든 처음 개념 부분은 학교가 책임지고 천천히 확실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속도를 중시하는 사교육의 선행학습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한 학생은 지금처럼 예·복습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옳은 방식임을 확신하고 낙관적인 자세로 열심히 공부하기 바랍니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실장·ihn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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