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내 유년시절 고향에서는 정월대보름 날이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지신밟기로 축제 한마당을 펼쳤다. 동네 남정네들은 꽹과리, 징 등을 치며 집집이 다니며 한 해의 액운을 쫓고 안녕을 빌었다. 그때 훌쩍한 키에 건장한 체격의 아버지는 포수의 복장으로 허리춤엔 꿩을 대여섯 마리 차고 나무로 다듬은 총으로 집집이 대문을 들어서며 포수가 새를 명중시키는 자세로 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탕탕하며 총소리를 냈다. 뒤따르던 농악대는 그 집 정지(부엌) 대청 등을 다니며 액운을 쫓았고 집집이 정지엔 정화수로, 마당엔 그윽한 술상으로 지신밟기 패를 맞이했고, 지신밟기가 끝나는 집에서 성의대로 돈을 내어 마을 기금을 마련했다.
동네 아이들은 해지는 줄도 모르고 지신밟기 패를 따라다녔고 나는 포수의 복장을 하고 총소리도 정말 총소리처럼 내시는 아버지가 제일 멋있게 느껴졌다. 나는 꿩도 우리 아버지가 정말 잡은 것이라고 아이들한테 우겼다. 그렇게 멋지던 아버지께서는 온 동네 액운을 다 쫓아놓고 당신의 액운은 정녕 쫓지 못했는지 그 해 여름부터 몹쓸 병에 걸려 약 2여년 동안 고생하시다가 하늘 나라로 가셨다. 매년 정월대보름 날이 되면 그때 아버지가 그리워 사진첩을 펼쳐본다. 건장하고 용감하게만 보이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사진 속에서만 웃고 계신다. 아버지, 하늘 나라에서도 정월대보름 날이 되면 지신밟기를 하시나요? 지신밟기를 한다면 아버지께서는 포수의 역을 맡아야 할 것 같아요. 그 역할 너무 멋있었어요. 편히 계셔요.
정성필(대구 달서구 유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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