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정현주의 휴먼 토크]자식의 부모사랑

입력 2009-02-12 14:45:55

외래를 가로질러 레이저실로 종종 걸음을 하는데 대기실의 많은 20대 젊은이들 가운데 초로의 신사가 할머니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수개월째 원형탈모로 치료중인 모자(母子)다. 그 분들이 진료실을 들어서면 독특한 나만의 '식스센스'가 발동, 향기를 느끼곤 한다. 단순하지만 수려한 잎 사이로 소박한 꽃을 피워내는 난에서 풍겨 나오는 짙은 향기가 그 모자에게도 난다고나 할까. 지인의 소개로 오시는 분들인지라 인적사항을 알고 있다. 아들은 대구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를 경영하는 중견 기업인이다. 그분은 모친이 뇌졸중·당뇨 등 여러 성인병에 합병증이 발생하자 수년 전부터 은퇴하고 모친을 모시고 병원에 다니며 보살피고 있다.

최근에 나는 짙은 꽃내음을 풍기는 두 편의 보석같은 이야기를 접했다. 90대 치매 모친과 노인복지관에 같이 다니는 70대 은퇴한 교장 선생님 사연이다. 충청도 출신인 이 교장은 치매로 갖은 기행과 언행을 일삼는 모친을 복지사에게 맡기기 미안해서 같이 등록하였단다. 치매노인 때문에 현대판 고려장도 일어나고 자손들의 가정이 파괴되는 예를 많이 들어서 치매의 기행쯤이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모친과 하루 종일 같이 다니며 흘리는 침도 닦아드리고 억지소리에 장단도 맞추고, 걷잡을 수 없는 식탐을 저지하며 모친과 같이 '아리랑'을 병창한단다.

또 한편의 명품스토리는 12년째 식물인간인 모친을 돌보는 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엄마는 소풍중'이란 책의 저자인 그는 건축학과 대학원생일 당시 모친이 사고를 당하자 학업을 전폐하고 모친을 간호하였다. 무모하리만치 파격적인 결정이었지만 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로 인해 취직을 하고 결혼도 한 권선징악 스토리를 가진 해피 엔딩의 주인공된 사람이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자신의 간병일지를 교회 홈페이지에 실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돼 대기업 홍보팀에 취직하고, 자원봉사 나온 참한 크리스챤 아가씨와 결혼하게 된다. 그는 모친이 소풍중이고 곧 돌아오실 것으로 믿는 대책 없는 아들이고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긴 병에 효자 없는데 너는 진짜 효자다"말이라는 현실감 없는 아들이다.

나도 이제 장성한 두 아들을 가진 부모가 되고 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진하게 다가온다. 내가 아이들에게 효도를 바라기 전에 나는 못된 불효가 없었는지 되돌아본다.

'나도 같이 가자-노인네는 집에서 애들이나 보세요! 나도 용돈 좀 다우-노인네가 쓸데가 어디 있어요? 나도 이런 옷 입고 싶다-노인네가 아무거나 입으세요! 힘들어 못가겠으니 오너라!-노인네는 택시 타고 오세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노인네는 가만히 방에나 들어가 계세요!' (못된 불효)

이 못된 불효에서 나는 과연 완전히 자유로운가? 험난한 바람과 눈보라에도, 천둥·번개 치는 천지개벽에도 가만히 이끌어주는 조국이요, 종교이며, 안방 같은 부모님에 대해 나는 과연 못된 불효를 하지 않았는지 짚어본다. 어릴 적 받은 사랑의 무게를 헤아리며, 한 없이 베푼 그분들의 사랑이 허무해지지나 않았는지 곱씹어 본다. 053)253-0707, www.gounm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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