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치유될 수 없는 영혼을 위하여

입력 2009-02-12 10:44:51

공직자 임명때마다 蓄財 구설수, 돈.권력은 함께 가질 수 없는 것

중국 北宋(북송)때 정치가로 資治通鑑(자치통감)을 지은 司馬光(사마광'1019~1086)은 많은 명언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明心寶鑑(명심보감) 繼善篇(계선편)에 나오는 '많은 돈을 모아 자손에게 남겨도 자손은 능히 지킬 수 없다. (중략) 남모르게 음덕을 쌓아 자손을 위한 계책으로 삼는 것만 못하다'라는 글귀이다. 善(선)을 권하면서 한편으론 富(부)를 경계하고 있다. 이어 그는 '내 남보다 뛰어난 것이 없지만 평소 한 일 가운데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일이 없을 뿐이다'(吾無過人者 但生平所爲 未嘗不可對人言也)라고까지 했다. 앞의 말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金言(금언)이지만, 뒷말은 곱씹을수록 아무나 할 수 없는, 당당하고 통쾌한 一喝(일갈)이다.

與野(여야)가 고위 공직자 임명 문제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이들의 공방과 함께 내정자(후보자)의 잘못된 지난 행적을 보고 있으면 차라리 고개를 돌리는 것이 나을 듯하다. 용산사태를 책임지고 사퇴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제외하면 정도 차이는 있지만 하나같이 재산 축적 과정이 불투명하다. 부동산 투기, 탈세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들춰지는 과정도 비슷하다. 누군가가 발탁되면 그의 흠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가 먼저 언론의 도마에 오른다. 당사자는 '몰랐다', 혹은 '가족이 한 일'이라고 잡아떼다 이러저러한 증거가 나오면 그때서야 겨우 '잘못됐다' '시정하겠다'는 말로 얼버무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먼저 잘못을 일부 시인하거나, 사죄를 청하면 오히려 떳떳해 보이는 異常感情(이상감정)까지 갖게 된다.

역사를 배우고 책을 읽는 것은 바른 것을 배우고 삿된 것을 경계함에 있다. 國政(국정)을 주도할 최고위 관료까지 오를 만한 인사라면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남다른 수양이 있거나 교양을 가졌음이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낱낱이 밝혀지는 잘못의 수법은 교묘하고 지능적이다. 혼자도 모자라 온 가족을 동원한다. 그리고는 명확한 증거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무조건 '모른다'고 잡아뗀다. 그래서 부패공화국, 부패백화점이라는 自嘲(자조)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린다.

古人(고인)들은 돈과 권력, 그 어느 하나라도 넘치는 것을 늘 삼갔다. 하물며 이 모두를 가지겠다는 것은 썩어서 치유될 수 없는 靈魂(영혼)을 가졌음에 다름 아니다. '부동산 투기'나 '탈세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명심보감이라도 읽었으면 '영화가 가벼우면 욕됨도 얕고, 이익이 크면 그 해도 깊다'(榮輕辱淺 利重害深)라는 글귀만으로도 마음가짐을 충분히 바르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나친 말이지만, 지금 우리는 분명 가난이 罪(죄)인 시대에 살고 있다. 세태가 이렇다 보니 淸白吏(청백리)는 아예 기대할 바가 아니다. 오히려 청백리가 貪官汚吏(탐관오리)보다 더 무섭다는 말도 있다. 자신의 깨끗함만 내세워 원칙대로 법령을 가혹하게 집행하니 백성들의 삶이 더 피폐하고, 범죄자를 많이 만들어 민심이 더 흉흉해졌다는 얘기다. 사마천의 史記(사기) 酷吏列傳(혹리열전)에도 이러한 사례가 많이 나와 있다.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이 없었다'라는 太平聖代(태평성대)를 일컫는 말이 청백리시대 때도 유행한 것을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외치지는 못해도 이래저래 떳떳하지 못한 인사에게 나랏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 돈과 권력을 양손에 붙잡으려고 하면 당연히 墜落(추락)한다는 것을 後世(후세)에 보여줘야 한다. 앞으로 나랏일을 논하는 자리에 가고 싶은 이는 누구든 한 손은 비워, 그 빈 손으로 국민의 손을 잡도록 해야 한다. 그 손이 얼마나 거친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이 시기에 함께 살았음이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이 참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청백리가 들끓어 피폐한 삶도 괜찮겠다는 바람이다. 경제난국 때문이든, 청백리 때문이든 어차피 피폐하다면 청백리 때문인 것이 차라리 덜 원망스러울 것 같아서다. 최소한 원칙이 지켜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自負心(자부심)은 남을 게 아닌가?

鄭 知 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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