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와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 놀라운 사람들의 나라, 중국

입력 2009-02-12 08:21:03

조금 촌스럽고 정겨운 그 얼굴들…

작년 여름 일하던 방송 프로그램 '스타킹'과 관련, 중국 상하이로 출장을 갔다. 중국 기인편 특집을 현지에서 촬영하기 위해서 였다.

60㎏ 쇳덩어리 신발을 신고 걷는 아저씨, 키 2.4m의 장신 남자, 겨우 다섯살에 몸무게가 53㎏인 중국의 리틀 강호동, 혓바닥으로 선풍기 날개를 멈추는 남자, 도자기를 씹어먹는 남자, 얼굴을 구겨서 접는 남자, 금붕어를 삼켰다가 다시 토해내는 남자, 엉덩이에 붓을 끼우고 글씨를 쓰는 남자 등등. 기인 특집편에 등장할 중국인들은 주성치 영화에나 나올 만한, 말만 들어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희안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희안한 사람들이 사는 중국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중국은 늘 그런 곳이었다. 4년 전에도 방송 프로그램 출장 때문에 상하이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4차선 대로 한 가운데 신호등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속옷들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윗통을 훌떡 벗은 아저씨들이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거리엔 몹시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이상한 냄새의 꼬치구이들이 노점상에 널려있고, 백화점 화장실마저 재래식이어서 놀라게 했던, 어디나 시끄럽고 어디나 지저분한 곳이 상하이 였다.

그러나 다시 찾은 상하이는 더 이상 내 기억 속의 상하이가 아니었다. 도심에는 화려한 백화점들이 깨끗한 화장실을 준비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푸드코트엔 다국적 패스트푸드점들이 자리잡은 대형마트 속

으로 쇼핑카터들이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아울러 사람들의 옷차림은 압구정거리 한복판처럼 세련돼 보였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중국의 '한류열풍'이라는 게 어떤 건지,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우리가 탄 버스에는 중국의 '국민스타'라는, 슈퍼주니어의 한경(슈퍼주니어 멤버 11명 중에 유일한 중국인)이 타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수백명의 중국인들이 버스를 에워쌌다. 그들이 한경 뿐만 아니라 "스타킹!"과 "강호동!"을 외치며 환호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모두 신이 났다. '스타킹'이 중국에서도 인기가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구나 싶었다. 그들은 우리가 머물렀던 2박3일 내내 호텔 주변을 지켰으며 촬영지로 이동할 때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미리 촬영장소에 진을 치고 우리를 기다렸다. 심지어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에 방을 잡고 2박3일 내내 동행취재를 하는 소녀 팬들도 있었다. 언뜻 보기에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 소녀들이 그 비싼 숙박비를 어떻게 감당할까 싶었는데, 그녀들은 촬영팀에게 부지런히 밤참까지 대접하며 그 특별한 이벤트를 즐기고 있었다.

연예인들과 함께 다닌 덕분에 나도 엉겁결에 한류스타 취급을 받았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카메라 세례를 받거나 선물상자를 받는 등의 신기한 경험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다. 그리고 웃지 못할 사실 또 하나, 스타킹에 깜짝 출연한 적이 있는 남자 스태프 한 명이 그 회 방송을 본 중국인들에게 한류스타로 유명해진 것이다. 그 남자 스태프는 공항에서까지 마치 슈퍼주니어처럼 사인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잔인할 만큼 뜨거운 상하이의 한낮,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날부터 촬영 준비에 시달리며 지쳐버린 스태프들과 연예인 출연진들, 그리고 우리의 놀라운 중국기인들이 고된 강행군에 지쳐갔다. 나는 60㎏ 철신을 신고 뙤약볕 아래 3시간이 넘도록 참가 순서를 기다리는 철신 기인과 함께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그는 몹시 힘들어 보였음에도 한국의 TV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신이 나 보였다. 지친 나에게 자신이 고향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는지, 자신이 무거운 철신을 신고 걸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들 수 없는 중국어로 끊임없이 쏟아내며 말을 걸어왔다. 철신 기인의 얼굴에는 상하이의 부유하고 세련된 사람들 얼굴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것 같았던 중국의 쿵푸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조금은 촌스럽고 정겹고 따뜻한 표정이 살아 있었다.

그날 촬영에 참가한 중국기인들 대부분은 고향에서부터 상하이까지 열 몇 시간이 넘도록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온 시골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대형마트나 한류스타 같은 중국의 새로운 모든 것이 여전히 낯선 듯 보였다. 철신 기인은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싸온 빈대떡 같은 걸 내게 나눠주었다. 이런 더위에 음식이 상하지 않았을까 걱정됐지만 나는 그의 호의가 고마워서 꿀떡 삼켰다.

힘든 촬영이 모두 끝나고 9명의 기인들을 고향으로 데려다 줄 버스가 왔다. 스태프들과 연예인들 모두 지쳐서 호텔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9명의 기인들은 쉬이 떠날 기세가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와의 촬영이 매우 즐거웠다는 말을 거듭하고, 악수를 하고 놓았던 손이 아쉬운지 또 손을 잡고, 촬영 소품들을 기념품으로 갖고 싶어 주으러 다니고, 우리를 고향으로 초대하고 싶다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우리는 상하이에서, 이미 상하이에는 없는, 첩첩산중 시골에 숨어있는 옛날 영화의 사람들을 상하이까지 데려와서 촬영한 셈이다. 드디어 기인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했다. 그들은 영화 밖으로 잠시 뛰쳐나온 컴퓨터그래픽 인물들처럼 자신들의 영화 속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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