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조선까지 찬란한 문화유산의 보고
소백준령은 역사·문화의 보고다. 소백의 진면목을 알려면 소백의 역사·문화를 모두 둘러봐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소백은 크게 영주와 단양 땅에 걸쳐 있다. 대개는 소백을 반만 보고 간다고 한다. 죽령터널이 시원스레 뚫렸지만 영주 땅 소백은 영남인들의 발길만 잦을 뿐 서울·수도권이나 강원도 사람들은 단양 땅을 더 친숙해 하는 것 같다. 금창헌 영주 소수박물관장은 "소백산의 역사·문화는 영주에 몰려 있다. 온후하면서도 기세등등한 소백준령의 위용과 함께 소백의 역사·문화를 직접 찾아다니며 가슴에 품고 가는 것 또한 소백의 진수를 아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일행은 영주 소백의 역사·문화 알리기에 나섰다. '절투어'부터 시작했다. 소백의 사찰은 부석사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워낙 유명한 사찰' 부석에 다다랐다. 때마침 해질 무렵이었고, 일행은 뜻하지 않은 행운을 거머쥐었다. 바로 부석의 일몰이었다.
'해가 회색구름을 점차 붉게 물들이며 쏜살같이 구름 속을 내달린다. 이윽고 구름밖으로 점차 붉은 기운을 뿜어내는가 싶더니 커다란 붉은 자태를 단번에 드러낸다. 붉은 해는 어둠이 깔린 소백준령에 붉디 붉은 기운을 내준 뒤 소백 너머로 순식간에 그 자태를 감추어버린다." 국내 어느 사찰도 부석사의 일몰에 견줄 수 있겠는가. 여기에 부석의 사찰 전경까지 더한다면? 자연 경관을 품안에 끌어안고 마치 부처의 온화한 자비심처럼 모든 이의 마음을 무아지경에 몰아넣는게 아닌가. 부석의 자랑이 이뿐이랴. 부석사는 국내 사찰 중 '노천 최다 국보 보유 사찰'이다. 그 유명한 무량수전(국보 18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호),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조사당벽화(국보 46호), 조사당(국보 19호) 등 5개의 국보를 보유하고 있다. 부석은 신라의 명승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자 화엄종의 종찰로도 유명하다. 부석의 이러한 화려한 명성에 더하여 부석은 세인들에게 부석만의 멋도 주고 있다. 금창헌 소수박물관장은 "요즘의 절은 중창을 거듭, 세를 키우는 것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사찰 본연의 모습은 고요함과 수행으로 대변되는 옛 그대로의 모습"이라며 "부석사는 사찰 본연의 모습을 잘 갖춘 사찰"이라고 말했다. 이제 부석을 찾으면 화려한 명성과 함께 부석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소백준령에는 국어사 연구의 소중한 자료인 월인석보가 있었고, 희방폭포 등 소백산 제 1경을 품은 희방사, 신라 때 소백산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비로사, 성혈사, 초암사 등은 부석사와 함께 소백의 소중한 불교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소백산 국망봉 동남쪽 기슭에 위치해 순흥 땅을 굽어보고 있는 성혈사는 사찰에선 보기드문 문화재를 갖고 있다. 바로 문창살이다. 정면 3칸의 창살에는 개구리, 학, 연꽃, 동자상, 물고기, 여의주, 기러기 등 다양한 형태의 문양이 어우러져 있었고, 그 공예기술이 섬세하고 뛰어났다. 조각 공예의 백미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소백을 말할때 국망봉 동남쪽 기슭 초암사 부근에서 시작하는 죽계계곡을 빼놓을 수 없다. 일행이 찾은 겨울의 죽계계곡은 신재 주세붕, 퇴계 이황 등이 구구절절 칭찬했던 옛 절경은 많이 퇴색되어 있었다. 세월을 탓하랴만 집이 들어서고, 과수원이 계곡의 또 다른 주인이 되어가고 있지만 죽계의 산수문학이 죽계의 영광을 후손들에게 고이 물려주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랄까. 고려 말 안축이 남긴 경기체가 형식의 죽계별곡의 배경지가 바로 죽계계곡이다. 주세붕도 자신의 유산록에 죽계의 절경을 칭송하는 시를 남겼고, 이황도 죽계계곡을 둘러보며 각각 아홉 계곡의 경승지에 이름을 붙였을 정도(죽계구곡).
소백은 고려와 조선의 왕실과도 그 맥을 잇고 있다. 박석홍 영주시 학예연구원은 "주세붕은 소백에 대해 '일읍오태지(一邑五胎地)라고 했다"고 말했다. 소백산 아래 지금의 순흥 땅에 고려말의 세 임금인 충렬, 충숙, 충목왕의 태와 조선 초에는 세종대왕의 정비인 소헌왕후 심씨의 태를 묻었고, 명봉산(지금의 예천 용문, 당시는 풍기군 관할)에 조선 문종의 태를 묻게 된데서 연유된 말이다. 현재 순흥에는 태묻이를 했다고 해서 태장리라는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소백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 순흥땅에 읍내리 벽화고분이라는 귀중한 유적도 낳았다. 읍내리 고분 벽화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고구려식 채색벽화가 그려진 고분 중의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이 벽화고분 말고도 주변에 10여기의 고분이 산재해 있고, 고분이 위치한 뒷산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옛 비봉산성 터 자리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크고 작은 석실고분들이 바깥 세상의 빛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백은 조선과 고려, 삼국의 소중한 문화유산도 품고 있다고 할 것이다. 글·이종규기자 영주·마경대기자 사진·정재호기자
자문단:금창헌 영주 소수박물관장 김준년 전 영주 선비촌장 박석홍 영주시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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