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백두를 가다] 선비화와 의상대사에 얽힌 '러브스토리'

입력 2009-02-06 06:00:00

▲ 조사당 석단 위에 있는 선비화.
▲ 조사당 석단 위에 있는 선비화.

#.선비화=부석사의 조사당 앞 석단 위에 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하여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아나고 잎이 피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전하면서 '선비화'라 명명됐다. 선비화는 실제로는 장미목과의 식물로 뿌리와 꽃이 신경통과 근육통의 약재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하튼 선비화는 봄에 노란색의 꽃을 피우고 있고, 의상대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신령스런 존재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아쉬운 것은 철장 속에 갖춰 있는 것이다. 귀한 몸이라 절을 찾는 사람들이 가지를 꺾고 꽃을 따는 사례가 빈번하자 오랜 보존을 위해 선비화에 보호막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부석사 창건설화, 선묘낭자=젊은 의상대사가 중국에 유학 중 잠시 머물렀던 집의 딸의 이름이 선묘였다. 선묘는 기품있는 의상의 모습에 반해 그리움의 정을 갖게 됐다. 이후 의상은 선묘의 집을 떠나 중국의 고승으로부터 공부를 마친 뒤 잠시 선묘의 다시 집을 찾았고, 선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할까 두려워 곧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선묘는 의상의 얼굴을 보기 위해 의상을 뒤쫓아갔지만 이미 의상의 귀국배는 떠났고, 선묘는 "이 몸이 용이 되어 스님이 타신 배를 호위하리라"는 맹세와 하께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선묘의 맹서는 그대로 이뤄져 용이 된 선묘는 의상의 배를 호위해 무사히 바다를 건너게 했다. 또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할 때도 바위를 하늘로 들어 올려 이미 자리잡고 있던 나쁜 무리를 물리치고 이곳에 절을 세우게 한 뒤 자신은 석룡이 되어 법당 아래 잠들어 있다는 전설이다. 현재 무량수전 뒤편 선묘각에 선묘의 화상이 안치돼 있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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