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를 이루다]한복디자이너 박태복씨

입력 2009-02-05 15:04:28

천의무봉(天衣無縫). 잘 지은 한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옷맵시가 극히 자연스럽고 어색하지 않아 마치 실과 바늘로 옷을 짓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한복의 전통 바느질법인 '깨끼(곱솔바느질)'는 안팎 솔기를 발이 얇고 성긴 깁을 써서 곱솔로 박아 바느질 자국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로 딱 50년, 반세기동안 한복짓기 외길을 걸어가고 있는 한복디자이너 박태복(62)씨. 그는 꼼꼼한 정성이 많이 드는 한복 짓는 일이 결코 지겹지 않다고 말한다. 고향이 해평 고로실 마을인 박씨는 어릴 적부터 병약해 겨울이면 집안에 머무는 일이 많았다. 박씨의 어머니는 늘 대가 집(밀양박씨) 식구들이 입을 옷을 손수 짓곤 했다. 어린 박씨는 이런 어머니의 한복 짓는 법과 바느질 솜씨를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다.

"12살 겨울방학 때 처음 동생들 한복을 지어 입혀 준적이 있죠. 당시만 해도 여자들에겐 음식과 바느질 솜씨가 커다란 덕목으로 여겨졌지만 어머니는 제가 한복 짓는 일을 반기진 않았습니다." 예부터 여자가 너무 솜씨가 좋으면 박복할까 염려가 됐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어린 박씨의 솜씨에 기특해하면서도 "호구지책으로 삼진 말라"고 충고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을 향사에 어머니가 지은 두루마기를 걸치고 나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근사하게 보여 좀체 한복에 대한 매력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후 어머니의 솜씨를 자연스레 이어받은 박씨는 한복디자이너 길을 걸으며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무형문화재 침선장 박선영, 최온순 선생과 출토복식을 연구하는 박성실 교수 등과 인연을 맺으면서 한복 전반에 대한 지식과 솜씨를 닦게 됐다.

재능과 노력이 세월 속에 녹아들길 30여년. 박씨는 한복의 전 종류, 즉 배냇저고리부터 활옷(폐백용)·원삼(결혼식 복장)·관복·곤룡포에 이르기까지 짓지 못하는 한복이 없게 되었다. 세종대왕의 영정과 고려문신 최유선의 그림만을 보고 재현해낸 홍곤룡포와 고려관복과 2005년 성주시 주최 '한국전통의상 500년전'에 복원, 출품한 조선시대 고종황제 즉위식 때 입은 황룡포와 황제와 황후의 예복인 황원삼 등은 박씨가 가장 아끼는 전통복식 소장품에 속한다. 그 외에도 한복과 어우러지는 각종 장식구와 소품 300여점은 한복인생 50년을 말해주는 작품들이다.

"도면이 없는 상황에서 고려관복을 재현할 때는 이틀간 주어진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봤죠. 그랬더니 머리 속에 도면이 잡히기 시작했고 이어 마름질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복짓기는 정성과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보통 두루마기의 경우 28조각, 저고리의 경우 12~16조각을 꼼꼼하게 바느질해야 한 벌이 완성된다. 각 부위별 바느질 방법도 다르다. 기본적인 진솔법부터 깨끼·박이·누비바느질·공구르기·홈질·감침질·사슬뜨기까지 다양한 바느질 법이 이용된다. 완성하는데는 저고리 꼬박 하루, 두루마기 하루 반이 소요된다.

"이젠 한복도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여성의 가슴라인을 살려주고 남성의 풍성한 품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평면재단을 통해 앞과 뒤의 품이 같은 전통한복 디자인보다는 입체재단을 통해 부분별 곡선의 미를 살려줘야 하는 거죠." 이 때문에 박씨는 한복을 맞추러 오는 사람들의 치수를 잴 때 몸의 비대칭 부분을 충분히 고려한다.

옷을 입었을 때 맵시를 위해 소재손질부터도 깐깐하다. 완성된 후 우러나오는 일이 없도록 옷을 짓기 전 풀과 물을 뿌리는 천 손질은 물론 천을 구성하고 있는 날줄과 씨줄을 하나하나 발라내 직접 불에 태워보면서 인조비단이 섞여 있는지 여부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옷을 짓는 마름질에 들어간다. 이런 세심함 덕에 '박태복 한복'은 리콜이 거의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저의 한복 짓는 기술을 전수하려 해도 힘든 일이라서 그런지 잘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제든 인연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성심성의껏 가르쳐주고 싶어요." 박씨가 요즘 바라는 일 중 하나이다.

1993년 정식 한복가게를 연 이래 박씨는 회원전 20회, 디너쇼 5회, 개인전시회 3회, 일반 전시회 18회 등을 가졌다. 그가 건네준 한 한복패션쇼 팸플릿의 경력란을 보면 한복부분 지방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장 3회, 심사위원 15회에 온고을 전통공예대전 대상,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선 4회에 장려상 1회, 제1회 중화신기원화복디자인콘테스트 10대 디자인상, 한복문화학회대구지회장 등 빽빽하다. 현재는 궁중복식연구회 대구지회장을 맡고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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