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총생산(GDP) 30조670억위안, 작년 동기에 비해 9%의 성장을 달성했지만 6년 만에 최저치의 성장률이라고 울상인 중국,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9%는 엄청난 규모의 성장인데도 불안하다. 바로 변화의 '조짐' 때문이다. 최근 공식적인 통계자료들에 의하면 중국경제발전을 이끌었던 삼두마차 '소비, 투자, 수출'이 급격하게 힘을 잃고 비실거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사회소비재 판매총액이 17.4% 성장했지만 전달과 비교하면 0.8% 성장한 것에 불과하다. 지난 몇 년간 중국인들의 애국적 소비 덕택에 주택, 의료, 교육분야가 개선되었고, 도시근로자나 농촌까지 사회보험, 의료보험까지 실시되어 은행에 갇혔던 현금이 상당 정도 시장으로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태부족이다. 한 공무원의 말처럼 "소비가 애국"이라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닌 현실이 된 것이다. 투자부문에서도 사회고정자산투자가 25.5%나 증가해서 투자구조가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수출입 분야의 상황을 고려하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지난해 10월 17.6%의 수출입성장률이 11월이 되면서 9%로 뚝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변화에 '천리제방도 개미구멍에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고조된 중국정부는 '농촌 가전제품 공급 프로젝트(家電下鄕)'라는 극약처방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이미 몇몇 주요 도시들은 발 빠른 행보를 시작했다. 최근 베이징시 상무국은 '농촌 가전제품 공급 프로젝트'에 관한 업무회의를 개최하고, 2009년 1월 23일부터 31일까지의 시험단계를 거쳐 2월 1일부터 2013년 1월 31일까지 정식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1기 유통기업으로 궈메이(國美), 쑤닝(蘇寧) 등 19개의 회사를 선정하고 13개구(현)에 유통망을 마련하였다. 해당제품으로는 컬러TV, 냉장고, 휴대폰, 세탁기, 컴퓨터, 에어컨, 온수기 전자레인지 8종이 확정되었고, 제품가격의 13%를 정부가 보조해 주기로 했다. 가전제품 구매 시 보조혜택을 받으려면 반드시 베이징시의 농촌호구를 가져야 하는데, 신분증을 지참하고 농촌 가전제품 프로젝트 참여업소라고 표시된 판매점에 가서 대상제품으로 지정된 가전을 구매하면 된다. 매 농촌가구는 한 가지 제품에 대해 4년에 한 번씩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프로젝트 제품의 최고 한도가격을 2천위안, 2천500위안, 1천위안 등으로 정하고, 구체적인 제품의 브랜드, 규격 등은 상무부, 재정부 정보통신부 등이 정한 표준에 의거해서 공고하기로 했다. 프로젝트 제품은 농촌실정에 맞게 특수하게 설계, 개조되는데 예를 들어 사용전압을 높인다든가 쥐막이판이 부착된다. 2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면 각 성은 각자의 실정에 맞추어 그 중 두 가지 항목을 프로젝트 제품으로 새롭게 선정할 수도 있는데 오토바이 등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 프로젝트 시험단계에서 나타난 소비정황을 보면 농민이 21인치 평면컬러TV를 구매하는데 소요되는 금액은 500위안(10만원 내외) 내외이다. 한 가지 주목할 현상은 가격이 하락하면서 질 높은 제품에 대한 구매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평면TV의 판매량이 뚜렷이 증가했고, 심지어 32인치 액정TV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후베이의 경우 농촌 가전제품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채 한 달이 되지도 않았는데 2만7천여건의 프로젝트 제품이 판매되었고 판매금액도 4천153만위안에 이르렀다. 광둥성의 경우도 광둥성 농촌호구를 가진 누구든지 13%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일상가전제품을 중국 특수성에 맞게 제작하여 농촌으로 공급한다는 '농촌 가전제품 공급 프로젝트', 개혁개방 이후 축적한 부를 농촌으로 분배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내막은 다르다. 세계금융위기로 수출길이 끊긴 중국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내수시장을 강제해야 할 만큼 급박하다는 증거이고, 정부 주도의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행할 것이라는 암시이다. 방법론 면에서도 너무 방어적이고 배타적이어서 의심이 간다. 선정된 기업의 대부분은 국유기업이고, 더군다나 공급되는 제품은 중국 농촌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제품 유통과정과 보조금 지급도 정부가 장악했다.
그러나 지켜볼 일이다. 급한 김에 내린 극약처방의 부작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일단 높아진 소비수준은 다시 낮아지기 힘들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일상의 생활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진 중국 농촌, 다음 단계의 요구는 무엇일까? 과욕일지 모르지만 불난 집 불구경은 단순히 불구경의 재미만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챙길 것은 무엇인지 조목조목 따져볼 때이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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