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2월 스물일곱의 나이에 결혼하고 수없이 많은 명절을 며느리라는 자리에서 맞이했습니다. 지금이야 시댁식구든 친정 식구든 멀리 있던 가족이 만나는 반가움이 앞서고, 내 아이들이 사촌들 만나 밤새 시끄럽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내 몸의 피곤함은 사라지지요.
하지만 아직도 명절 하면 잊혀지지 않는 날이 있답니다. 결혼하고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맞이한 '설'이었습니다. 큰 형님은 조카를 곧 출산할 예정이어서 참석을 못하셨고 둘째 형님과 저는 몇 달 간격으로 결혼했으니 신참 새댁들이었습니다.
어머님이 큰 수술을 하신 후라 그해 명절은 작은댁에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앞치마 하나 들고 범물동 작은댁으로 향했습니다.
인사를 드리자마자 부엌으로 들어서니 헉! 온갖 종류의 재료들이 웃으며 반기는데.
시댁이 원래 예천이 고향이신지라 명절엔 꼭 배추 전을 올리신다며 큰 배추 다섯 통을 준비해 두셨는데 아무리 구워내도 끝이 없었습니다. 새댁들이 잘하나 못하나 지켜보시는 듯해서 긴장은 되고, 한가지 끝내고 나면 또 다른 종류의 재료들이 기다리고 있고 형님과 저는 꼬박 다섯 시간을 앉아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야 했습니다.
결혼 전엔 돕는다고 부침 몇 가지 하면서도 큰일 해 놓은 것처럼 유세를 떨었는데, 시집와서 아무 소리 못하고 아픈 허리 돌려가며 저린 다리 주물러 가며 하고 있자니 엄마 얼굴이 순간 순간 떠올랐습니다.
'새댁들이 들어왔는데'라며 얼마나 많이 준비하셨는지 저녁 먹을 때까지 쉴 틈이 없었지요.
저녁식사 후에 둘러앉아 윷놀이를 하고 어른들 잔심부름하고 있자니 갑자기 친정 생각에 '내가 지금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친정도 큰집이라 명절 전날이면 작은 아버님 식구들과 작은 할아버님 식구들까지 잔칫집같이 시끌벅적했는데 이젠 나만 그 자리에 없다고 생각하니 속상하기도 하고 눈물이 나오려 했습니다.
열시 넘어서 집으로 오려는데 시아버님께서 들렀다 가라 하시더라고요. 시할머니께 '묵은세배' 드려야 한다면서. 그래서 복현동으로 가서 세배 드리고 집으로 향하는데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엄마께는 순종하며 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결혼해서 남의 집에 와서 사람 도리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결혼 전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후회와 미안함이 그대로 눈물이 되고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그때 신랑이 하는 말이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그저 너 마음이 원하는 만큼 너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 하더라고요.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마음으로 명절과 집안 큰일을 하고 있지요. 일년 365일 중에 며칠인데 힘들게 뭐 있나요. 신랑이 좋아하고 애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찬물에 손이 시려도 제때 밥 한 번 못 먹어도 겨우 이틀이면 지나가는 명절이라 스스로 세뇌를 합니다.
홍애련(영주시 영주 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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