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커피·피클로 해장한다?!…독특한 숙취해소법

입력 2009-01-31 06:00:00

고객 접대로 술자리가 잦은 영업사원 윤모(34)씨는 이튿날 눈을 뜨자마자 쓰린 속 달래기에 바쁘다. 물도 한 사발 들이켜 보고 아내가 챙겨주는 해장국도 가능한 한 챙겨 먹는다. 그렇지 않으면 점심때라도 얼큰한 국물로 술기운을 씻어내야 한다. 가끔이지만 술자리만 갔다 하면 폭음으로 이어지는 직장인 박모(48)씨도 숙취 해소법에 관심이 많다. 박씨는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은 술도 많이 마시는 만큼 속풀이 방법도 다양한데, 다른 사람들은 해장을 어떻게 할까?'. 술 좋아하는 것이 어디 한국인만의 성향일까? 주당들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고, 이들의 속을 풀어주기 위한 해장음식도 다양하다.

◆국가·민족만큼 다양한 해장음식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해장음식은 바로 콩나물해장국이다. 이는 얼큰한 맛의 국물 있는 음식이 해장음식의 대표라는 증거인 셈. 맥주와 청주를 유난히 많이 마시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주로 죽을 먹는다. 쌀로 쑨 죽(오카유)에 반찬으로 매실 절임인 '우메보시', 일본식 채소 절임을 곁들여 식탁에 올린다. 녹차에 다시마와 다랑어 국물 등을 부어 밥을 만 '오차스케'로 속을 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해장국과 비슷한 사례이다. 중국에서는 '싱주링'이라는 전통차를 마신다. 싱주링은 인삼, 귤껍질, 칡뿌리 등 6가지 천연재료를 섞어 만든 전통차. 기원전 200년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아침에 한 잔 쭉 들이켜면 정신이 확 들 정도로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루마니아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소 내장탕을 먹는다. 감자 같은 뿌리 야채에 식초, 마늘, 크림, 소금을 넣어 푹 끓여낸다. 터키와 멕시코에서도 이와 비슷한 음식을 해장국으로 즐겨 먹는다.

서구에서는 토마토를 해장에 많이 이용한다.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프레리 오이스터'(Prairie Oyster). 날달걀이나 노른자 위에 소금, 후추, 우스터셔 소스, 토마토 주스, 식초, 브랜디 등을 섞은 음료이다. 토마토 주스와 맥주를 섞은 '레드 아이'(Red Eye)를 해장술로 마시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해산물을 끓여 국물을 내고 여기에 토마토와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어 약간 얼큰하게 끓여 낸 해산물 수프로 해장을 한다. 진하디 진한 에스프레소를 두 잔씩 마시기도 한다. 브라질에서도 진한 커피로 숙취를 해소한다. 그리스에서는 커피 원두를 갈아 레몬주스에 타서 마신다.

◆해장술·시큼한 음식 즐기기도

해장술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한국 외에도 해장술을 즐기는 나라는 적잖다. 맥주를 좋아하는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네덜란드인들은 차가운 생맥주 두 잔으로 해장을 대신한다. 특히 전날 술을 마신 술집에서 마셔야 더욱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이때 마시는 해장술을 '개털(Hair of the Dog)'이라고 한다. 개에 물려 아플 때는 그 개의 털을 한 움큼 뽑아서 덧대면 상처가 낫는다는 속설에서 나왔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풍습이 있다. 영국에서는 해장술로 토마토 주스와 보드카를 섞은 '블러디 메리'나 맥주를 마신다.

시큼한 음식을 즐기는 나라도 있다. 폴란드에서는 신 우유(상온에 1, 2일쯤 보관한 우유)를 마시거나 피클즙을 짜서 먹는다. 신맛을 더 내려고 식초를 넣기도 한다. 러시아에서도 오이 피클이나 고추 피클 등의 시큼한 국물로 속풀이를 한다.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자작나무 이파리로 몸을 때려 혈액순환을 증진시키기도 한다. 양배추와 오이즙에 소금을 섞어 만든 '라솔'이라는 음료도 있다. 북유럽에서는 청어를 해장음식으로 즐긴다. 독일에서는 청어를 소금과 식초에 절인 뒤 양파 절임에 싸서 먹는 롤몹스(Rollmops)를 해장용으로 아침 식탁에 올린다.

술 마신 다음날 기름기 있는 음식이 당긴다며 피자나 자장면을 찾는 사람이 있다. 태국인들이 그렇다. 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기름에 튀긴 삶은 달걀에 매콤한 소스를 얹은 '까이 룩 꿰이'라는 음식으로 숙취를 푼다. 술독에 고생하는 사위를 위해 장모가 해 준다고 해서 '사위 달걀'이라는 별명도 있다.

해장법 중에는 아주 특이한 것도 있다. 몽골인들은 양의 눈알을 삭혀서 토마토 주스에 넣어 마신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겨드랑이 밑에 레몬즙을 바른다. 이는 영국에까지 전해졌다. 이라크에서는 염소머리를 통째로 고아 그 국물을 마신다. 아이티 공화국의 해장법은 기이한 수준이다. 이들은 술병의 코르크 마개에 검정 핀 13개를 꽂는다. 그러면 숙취가 생기지 않는다고 믿으니 민간신앙 같다. '음식 잡학 사전'(윤덕노·북로드)에는 고대 로마에서 숙취가 있을 경우 카나리아 튀김을, 고대 그리스에서 양의 폐를, 그리고 중세 유럽에서는 장어를 먹은 이야기가 나온다. 나라별로도 그렇지만 시대별로도 해장 방법이 다양하게 달라졌음을 알려준다.

◆해장음식의 효과에 대한 찬반 의견들

해장국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실험은 여러 차례 진행됐다. 콩나물에서는 '아스파라긴산'이, 북어에는 이와 함께 '메티오닌'이라는 α-아미노산이 간의 해독작용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역이나 조개 등 해조류에는 '글리코겐'이 알코올 부산물로 숙취를 유발하는 아세트알데히드의 대사를 돕는다. 김치의 주된 발효균 중 하나인 뢰코노스톡이 숙취를 푸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과나 배, 복숭아 같은 과일을 갈아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된 데다 비타민과 당분·수분이 풍부해 숙취해소와 피로회복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수분과 당분, 알코올 분해효소가 충분한 칡즙, 카페인, 타닌, 비타민 B·C 등이 들어있는 녹차도 숙취를 완화하는 음식들이다.

그러나 해장음식의 효과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숙취 해결책은 없다는 학자들도 많다. 미국 인디애나대 의과대학 연구진이 지난해 12월 의학저널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어떤 숙취 제거제도 지끈거리는 두통과 욕지기를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유일한 예방책은 덜 마시는 것뿐이었다.

술 마시고 난 다음날 생각나는 얼큰한 음식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맵고 짠 음식은 술로 인해 상처를 입은 위벽을 자극해 위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름진 해장국도 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맑은 해장국을 권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아스파라긴산을 주성분으로 해 숙취 해소를 돕는다는 음료의 효과에 대해서도 이용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임상적으로도 효과가 있는지 명확히 입증된 바도 없다. 숙취에는 알코올의 절대량과 저혈당, 탈수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취하는 속도가 늦어져 평소보다 더 과음을 하게 될 우려가 크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동산병원 가정의학과 김대현 교수는 "숙취해소와 관련된 300여개의 논문을 종합해 보면 어떤 물질도 과음 뒤 숙취에 유의한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며 "숙취를 예방하는 방법은 과음을 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가 제안한 건강에 해롭지 않고 숙취가 생기지 않는 적절한 음주량은 3잔(알코올 26g) 이하. 이 정도면 주당들이 받아들이기엔 턱도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어쨌든 내 속을 편하게 하는 해장국이 널려 있으니 한 잔의 유혹을 떨쳐낼 주당들은 없을 것 같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해장국의 유래와 요건

해장음식의 대표 메뉴는 뭐니 뭐니 해도 해장국이다. '해장(解酒+呈■)국'은 '숙취를 푸는 국'이라는 뜻이다. 해장국은 '해정(解酊)국'에서 유래해 와전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해정 또한 숙취를 푼다는 의미가 있다. 북한에서는 해정탕으로 부르고 있다. '성주탕(醒酒湯)'도 같은 뜻이다. 해장국은 1883년 개항한 인천에서 노동자들이 빈속을 달래기 위해 끓여 먹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인천을 출입했던 일본인과 서양인은 쇠고기의 주요 부분(안심·등심)만 먹었다. 쓰고 남은 내장이나 잡고기, 뼈를 구하기 쉬워 식당에서 이를 이용해 국을 끓이면서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아무 음식이나 해장국이 될 순 없다. 알코올로 지쳐 약해진 몸에 자극적이지 않아야 한다. 시원한 국물과 함께 부드럽게 넘어가야 제격이다. 배불리 먹어도 속이 불편하지 않도록 지방이 많아서는 안 된다. 음주로 손실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단백질이나 아미노산, 비타민 등의 영양가도 높아야 한다. 맛도 있어야 함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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