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라는 영화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냐는 물음에 한결같이 '원앙?'이라고 답한다. '워낭'은 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을 뜻한다. 하기야 요즘 세대들은 워낭을 본 적도 없으니 그게 뭘 뜻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딸랑거리는 워낭소리는 고즈넉한 사찰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와 닮았다. 영화를 본 기자는 가슴이 먹먹해서 한동안 숨 쉬기가 어려웠다. 처음 TV 영화관련 프로그램에서 '워낭소리'를 접했다. 5분이 채 안 되는 그 짧은 예고편을 보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혼자서 봤기에 다행이지 누군가 곁에 있었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이라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왜 울었을까? 슬픔, 서글픔, 상실, 떠나보냄, 나이듦과 늙어감. 표현할 수 있는 어휘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결국 울음의 이유를 찾는 작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충렬 감독은 아버지를 통해 소를, 소를 통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적 모티브였을 뿐 가슴 먹먹함의 이유는 아니었다.
◆소와 함께 한 30년 세월
경북 봉화군 한 마을. 이곳에는 올해 여든살인 최원균 할아버지와 일흔일곱인 이삼순 할머니, 그리고 올해 마흔살인 소(牛)가 살고 있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 노인. 그에게는 30년간 함께 살아온 늙은 소 한 마리가 있다. 나이가 무려 마흔. 소들의 평균 수명이 15살임을 감안하면 기적적으로 오래 살아온 셈이다. 최 노인에게 소는 농사짓는 도구가 아니다. 우직할 만큼 기계를 거부하고 손수 농사를 짓는다. 소를 몰아 밭을 갈고 꼴을 베서 소를 먹이며 소가 힘들면 자신이 손수 논을 다듬고 모를 낸다. 기계를 쓰면 더 많이 수확도 하고, 자식들 성화를 따라 농사를 접으면 편히 살 것을 알지만 매일 묵묵히 소를 몰고 들로 나간다. 귀가 잘 안 들려서 고함을 질러야 의사소통이 되지만 소에 매단 워낭소리에는 거짓말처럼 고개를 돌린다.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와 다리를 저는 소. 제대로 거동조차 못하는 소를 둑에 앉혀두고 최 노인은 무릎으로 기어가며 밭을 맨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하고 손수 쇠죽을 끓여서 먹인다.
소는 또 어떤가. 이름도 없이, 최노인과 30년을 동고동락한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산 소일지도 모를 녀석. 폭우로 지붕이 무너져도 할아버지가 깰까 조용히 장맛비를 견뎌내고, 젊은 소에게 몰려 풀도 못 먹고 쫄쫄 굶어도 불평하지 않는다. 자식들의 성화에 못이긴 최 노인은 어느 날 소를 우시장에 내다 팔 결심을 한다. 장날 새벽 일찍 일어난 최 노인은 평소보다 푸짐한 쇠죽을 끓였지만 자신의 운명을 안 것일까? 소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쇠죽을 한사코 마다한다. 그리고는 달구지에 최 노인을 싣고 터벅터벅 우시장으로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우시장에서도 최 노인과 소는 화젯거리다. 소의 나이 때문이 아니라 터무니없이 높게 부른 값 때문이다. "500만원 이하로는 안판다"는 최 노인에게 우시장 사람들은 그 가격에는 팔 수 없다고 한다. 최 노인도 알고 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최 노인은 소가 이제 일 년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선고를 전해 듣는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라고 부인하지만 어느 날 기어이 소는 주저앉은 채 일어설 줄을 모른다. 40년을 달고 살았던 워낭과 코뚜레를 풀어주는 최 노인. 소도 그 의미를 안 것일까? 햇볕 따스한 외양간 옆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내민 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싶지만 한사코 최 노인은 거부한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것을. "그래, 잘 가라"며 내키지 않는 손길을 억지스레 내밀어 얼굴을 쓰다듬어주자 그제서야 소는 고개를 젖히고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사람보다 나은 말 못하는 소
영화가 끝난 뒤 한걸음에 그곳으로 달려가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 이면에는 확인과 부인이 공존한다. 이토록 슬프도록 절절하게 아름다운 이야기의 원천이 어느 곳엔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고픈 충동이었고, 마지막까지 친구이자 주인이었던 노인과의 이별을 못내 아쉬워했던 늙은 소의 죽음을 부인하고픈 간절함이었다. 봉화군 한 마을에 살고 있다는 노인의 전화번호를 어렵사리 받아들었지만 찾아갈 수 없었다. 이충렬 감독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이 감독은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남겨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여러 편의 영화와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던 소시민들의 삶이 이후 호기심 어린 수많은 손길과 눈길 때문에 변질되고 왜곡됐다며 부디 그네들의 삶을 영화 속에서만 느껴달라고 했다. 비록 그 관심이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일지라도 자칫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염려였다.
영화는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PIFF메세나상 수상, 제25회 선댄스영화제 월드다큐멘터리 경쟁 진출, 서울독립영화제 2008 관객상 수상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선댄스 진출은 의미가 크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를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는 영화제인 선댄스는 2006년부터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부문을 국내(미국), 국외(월드)로 나눠 4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 '워낭소리'는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월드 다큐멘터리 경쟁'(World Documentary Competition)' 부문에 한국 최초로 진출한 작품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기존의 다큐와는 사뭇 다른 면이 있다. 마이클 무어식의 내레이션과 인터뷰가 넘쳐나는 '시끄러운' 다큐가 아니라 마치 말 없는 수채화를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영화 소개를 보면 '없음과 느림이야말로 '워낭소리'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저력으로 속도전의 세상과 비교되며 잔잔한 웃음과 여운을 준다고 돼 있다.
평생 할아버지만을 바라보고 산 할머니의 끊임없는 신세 한탄이 대사의 80%를 차지한다. 할머니는 조연이지만 영화 속에서 중요한 전달자로 자리매김한다.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를 가장 오래 지켜본 이로써 비록 한탄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 지극한 애정이 숨어있다. 특히 뼈가 있는 반어법을 주로 구사하는 할머니의 주옥같은 대사들은 '할머니 어록'으로 불릴 만큼 관객들에게 큰 웃음도 선사한다. 할머니는 고장 난 라디오를 두드리는 할아버지에게 "할배도 고물, 라디오도 고물!"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고, 무뚝뚝하게 영정사진을 찍는 할아버지를 향해 "웃어!"라고 외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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