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그들은 어떻게 겨울을 날까?

입력 2009-01-31 06:00:00

평년 기온을 웃돌던 겨울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동식물에게도 겨울을 견뎌내기란 여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까딱 잘못하다간 생명을 부지할 수 없다. 때문에 동식물은 저마다 겨울나기 비책을 진화시켜 왔다. 동식물의 신기한 겨울 생존 대책을 살펴본다.

◆먹고 자고 안 움직이는 것이 최고

행동반경이 좁은 동물들에겐 한겨울에 따뜻한 곳을 찾아 들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최고. 이른바 겨울잠, 즉 동면(冬眠)에 빠지는 것이다. 동면에는 ▷개구리형 ▷곰형 ▷박쥐형 등이 있다. 먼저, 개구리형은 육지의 변온동물에서 볼 수 있다. 기온이 내려가면 체온도 내려간다. 이때 땅 깊은 곳이나 물밑 등 온도가 별로 내려가지 않거나 변동이 적은 장소를 찾아 겨울잠을 자면서 월동한다. 체온이 떨어짐에 따라 심장의 박동이나 호흡 작용도 떨어진다. 개구리·거북·뱀 등 척추동물 및 절지동물·조개류 등 무척추동물이 이에 해당된다. 캐나다 카를레톤대 자넷 스토레이 교수는 지난 2005년 숲개구리가 체내 수분의 65%를 얼음으로 만들어 '냉동 개구리'로 겨울을 나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곰은 항온동물 가운데 겨울잠을 자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곰은 겨울에 추위가 닥쳐오면 나무 밑의 빈 곳이나 굴 속에서 겨울잠을 잔다. 그에 대비해 곰은 동면 돌입 전 다량의 먹이를 먹는다. 몸에 많은 지방을 저장해 겨울잠을 자면서 그것을 소모하기 위해서. 자극이 있으면 활동하기도 한다. 파충류나 양서류의 동면(hibernation)과는 구분해 '토포'(torpor:휴면 또는 무기력한 상태)라고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완전한 동면이 아니라 반 가사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지방의 축적 유무는 박쥐형 동면과 차이를 드러내는 점이다. 암컷은 겨울잠을 자는 도중에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기른다. 오소리도 곰형의 겨울잠을 잔다.

반면, 먹이를 확보할 수 있는 동물원의 곰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북극곰도 겨울잠을 안 잔다. 체온을 유지해 주는 다양한 기능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피부 가까이 털가죽 층과 차가운 물속에서 털이 뒤엉키는 것을 방지하는 보호용 체모, 열을 흡수해 체온을 유지시켜 주는 검은색 피부막 등이다.

기온이 내려가면 체온도 내려가지만 어느 한도를 넘지는 않는 박쥐형 동면도 있다. 겨울에 체온이 바깥 기온 수준까지 떨어지면 겨울잠을 자다가 그 이하가 되면 활동을 하여 체온을 높인다. 가사상태라는 점에서 곰형과 같이 보기도 한다. 이러한 동면 체온은 겨울잠쥐의 경우 6℃까지, 긴가락박쥐와 같이 소형 박쥐류에서는 0℃ 또는 그 이하까지 내려간 기록이 있다. 햄스터·다람쥐·고슴도치 등의 소형 항온 동물도 박쥐형 겨울잠을 잔다.

◆추우면 따스한 곳으로

추위가 닥쳤을 때 가장 좋은 대책은 따뜻한 곳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다. 일종의 '줄행랑 전법'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이동하는 철새들이 대표적이다. 북반구 서식 철새들은 보통 여름에는 고위도 지역에서 번식하고, 겨울이 되면 남쪽으로 내려와 겨울을 지낸다. 한국에서 번식하는 제비나 칼새는 한국보다 더 남쪽으로 날아간다(여름 철새). 이동이 늦어 추위를 맞게 될 경우 제비들은 서로 몸을 맞대고 체온으로 추위를 피하기도 한다.

한국보다 고위도 지역에서 번식하는 두루미, 오리, 기러기류는 한국으로 날아와 겨울을 보낸다(겨울 철새). 겨울 철새들이 사는 대표적인 고위도 지방인 시베리아는 한겨울 기온이 영하 40℃까지 내려간다. 체온이 40℃를 넘고 두꺼운 깃털로 몇 겹이나 무장한 조류도 견디기 힘든 극한의 추위. 이렇게 되면 땅이 얼음으로 뒤덮이게 되고 먹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먹이도 풍부하고 날씨도 비교적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온다.

철새가 텃새가 되기도 한다. 최근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겨울 기온이 상승했고, 그 결과 강이나 호수가 얼지 않아 먹이 확보가 쉬워지면서 한국에 눌러앉는 철새들이 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오히려 도시화·공해로 인해 먹이가 부족해져 남하할 체력을 비축하지 못하면서 텃새화한다는 분석도 있다. 북극의 툰드라 지방에 사는 순록도 먹이를 찾아 이동을 한다. 주 먹이원인 지의류나 이끼, 작은 들풀이 겨울철에는 겨우 생존만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겨울준비는 미리미리

일년 내내 한 지역에 사는 텃새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겨울을 난다. 곤줄박이는 깃털이 포근해 굳이 멀리 이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철 먹이를 구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곤줄박이는 겨울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먹이를 저장해 놓는다. 어치, 잣까마귀, 까치 등도 이런 방식으로 겨울을 대비한다.

옷을 갈아입는 새들도 있다. 넓적부리도요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새 깃털로 갈아입는다. 차가운 강물을 잘 막고, 깃털 사이사이 공기를 잘 품어 보온 기능을 높여주는 깃털이다. 북극곰이나 여우도 겨울이 오기 전에 따뜻한 털옷으로 겨울 대비를 단단히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동면을 하는 새도 있다. 미국에서 서식하는 쏙독새류는 바위 틈에서 가사상태로 월동한다. 이때 쏙독새류는 체온이 보통 41℃에서 18℃까지 급감한다.

체내 순환계의 부동액을 이용해 체액을 얼지 않도록 하는 동물도 있다. 남극의 차가운 바닷물 속을 헤엄치는 펭귄 등 극지방 생물이 그렇다. 겨울낚시로 인기가 있는 빙어처럼 추운 물속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물고기의 체내에는 체액을 얼지 않게 하는 '부동단백질'이 있다. 어떤 물고기는 혈액 속에 적혈구가 없다. 적혈구가 추위로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신 산소가 충분히 녹아있는 차가운 물속에서 직접 산소를 받아들인다. 하등생물인 크릴이나 미생물도 동물의 활동성을 감소시키고 혈액의 어는점을 낮추는 '저온자극유도 단백질'(cold shock protein)을 체내에서 만든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식물의 겨울나기

식물이 한겨울에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관건은 몸속에 지니고 있는 다량의 물이 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어는 과정이나 세포막의 성질, 세포액 농도(침투압)의 변화가 영향을 준다. 여기에 따라서 겨울 추위를 견디는 나무의 내동성(耐凍性)이 달라진다. 이는 수종이나 부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소나무 같은 상록수가 겨울철에도 푸름을 유지하는 것은 기온 하강에 따라 수액을 농도 진한 부동액으로 자유롭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식물이 복잡한 신경조직이나 순환조직이 없어서 가능하다. 체액 조성을 달리해도 생존에 거의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설명. 보통 식물의 수액은 겨울엔 얼지 않도록 진하게, 여름엔 순환이 잘 되도록 묽게, 봄에는 에너지가 높도록 달짝지근하게 만든다. 가을엔 흐르는 양을 살짝 줄여 낙엽이 지게 한다.

사실 식물의 겨울나기는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물의 털갈이는 식물에겐 너무 평범한 일. 오밀조밀한 털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목련의 겨울꽃눈이 그렇다. 겨울이 오기 전 미리 털옷을 갈아입은 이 꽃눈 속에는 목련 꽃망울이 숨겨져 있다. 따뜻한 꽃눈 속에서 겨울을 보낸 꽃망울은 봄이 되면 일제히 터진다. 벚꽃이나 개나리도 그렇다. 마로니에 나무는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아교 같은 물질을 만들어 커다란 꽃눈을 촉촉이 감싼다. 이 물질이 겨울철 내내 꽃눈을 감싸 완벽한 방한작용을 한다.

툰드라 지역에 사는 지의류나 이끼, 작은 들풀 등은 재빨리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한다. 겨울철에 겨우 생존만 하다가 여름철 잠깐 따뜻해지는 틈을 타 온갖 화려한 꽃을 피워 대지를 갑작스레 수놓아 버리는 방식이다. 질경이나 민들레는 곰처럼 반 가사 상태로 겨울을 나는 식물이다. 바깥에 조금 나와 있는 살아있는 잎(로제트)으로 겨울을 나는 식물이다. 이들은 따뜻한 기운만 받을 수 있으면 겨울에도 성장한다. 봄에는 어느 식물보다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조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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