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반값 변호사' 쏟아진다?

입력 2009-01-31 06:00:00

지난 2007년 7월 3일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급작스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사업은 가인가 및 본인가 과정을 거쳐 개원을 눈앞에 두면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이 제도화하고 있는 로스쿨(Law School)을 모델로 도입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그간 학부교육인 법과대학 교육에 기반을 두고 있던 법률가 양성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제도.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변호사 배출 숫자가 크게 늘어 국민에 대한 법률서비스를 향상시키고, 다양한 학부 전공자가 로스쿨에 입학해 법률가 전문성도 높일 수 있다. 첫 졸업생이 배출되는 3년 후 로스쿨은 기존 법률서비스 시장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과연 어떤 변화가 불어닥칠지 예상해 보자.

◆로스쿨 도입 이후의 상황들

사실 로스쿨 이후 어떤 점들이 달라질지에 대해 누구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로스쿨 정원 2천명 중 과연 몇 명이 변호사자격시험을 통과할지도 미지수이고, 법률서비스 수요자인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수임료 부분도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인터넷 토론광장 등에는 로스쿨 도입 이후 법률시장에 대한 우려와 함께 기대감이 뒤섞여 있다.

변호사 숫자가 많아지는 것을 일률적으로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변호사가 많이 배출되면 선임비용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100명이던 시절에 비해 현재 매년 1천명씩 배출되면서 카드값도 못 갚는 변호사도 있다고 한다. 바꿔 말해서 로스쿨을 통해 변호사가 많아지면 그만큼 경쟁력에서 뒤지는 변호사의 수임료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가 벤치마킹한 미국 로스쿨 제도를 보면 답이 나온다. 미국의 변호사 선임비용을 결코 싸지 않다. 능력 있고 승소 가능성이 높은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렇지 않은 변호사는 수임조차 못해 허덕댈 것이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로스쿨을 추진한 측도 사법개혁과 변호사의 전문성을 내세웠지 수임료를 낮춰서 일반 국민들에게 변호사의 문턱을 낮추자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능력이 없는 변호사를 잘못 만나 충분히 승소할 수 있는 소송에서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넉넉한 수임료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승소율은 오히려 높아질 수도 있다.

로스쿨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법률서비스의 질적 저하이다. 현재 로펌 쪽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나와도 결코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사법시험 출신들은 3년 이상 법률공부를 해서 이론적으로 무장한 뒤 연수원에서 다시 2년간 실무교육을 익혀서 시장에 진출하는데 비해 로스쿨은 법률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이 3년간 1억원 가까운 돈을 들여 공부한 뒤 곧바로 사법계로 진출하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공부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로펌들도 이것을 알고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을 중용하지 않고 간단한 소송사건만 맡길 것이다. '고시 낭인'을 없애겠다며 3년 전 로스쿨을 도입했던 일본은 이미 로스쿨 실패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변호사가 바라보는 2012년 이후

최근 전국 변호사 숫자는 1만명 시대를 맞았다. 대구경북에만 334명의 변호사가 활동 중이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1천명 시대를 맞으면서 변호사가 넘쳐난다는 말까지 들린다. 실제로 지난 12일 사법연수원 36기생 975명이 배출됐지만 판사 89명, 검사 88명, 군법무관 및 공익요원 180명이 임용됐을 뿐 전체의 63%인 618명은 무관의 변호사로 연수원을 나서야 했다. 이들 중 소수만이 로펌에 들어갔을 뿐 사법연수원생 중 40% 이상은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기업들은 인하우스(사내) 변호사 채용까지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경력이 쌓이지 않은 채 사무실을 열었다가는 적자를 면키 어려울 정도로 연수원 수료생들의 구직난이 심각하다.

로스쿨 졸업생이 배출되더라도 5년간 사법시험은 유지된다. 바꿔 말하면 로스쿨 출신 2천명 중 변호사자격시험 합격선을 75%(아직 70%와 80% 사이에서 결정하지 못했음)로 볼 때 1천500명이 변호사 자격을 따고, 사법시험 출신 1천명을 합치면 연간 2천500명의 법조인이 새로 생겨나는 셈이다. 물론 변호사시험 합격비율이나 사법시험 합격자는 아직 조정 중이어서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어찌됐건 사법시험 출신 1천명도 소화 못하는 상황에서 2천500명은 어떨까?

변호사가 넘쳐나면 선임비용이 낮아지지 않을까? 당장 국민들로서는 변호사 문턱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대구지방변호사회 홍보이사인 박정호 변호사는 "절대 숫자가 많아져 경쟁이 치열해지면 사건을 수임하지 못한 변호사들이 선임비용을 낮출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사건을 맡지 못하는 변호사가 사건을 많이 맡는 변호사만큼 능력이 뛰어나고 승소율도 뒤지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결국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이기기 위해서인데, 패소 위험을 감수해가며 선임비용이 싼 변호사를 찾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건당 변호사 수임료는 공인중개사처럼 지도가격이나 협정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략 서울은 500만원, 대구는 200만~300만원선이다. 로스쿨 변호사가 쏟아져 나온다고 해서 선임비용이 절반 또는 그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뜻이다. 오히려 승소율을 비교해서 변호사 사이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해질 수 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박정호 변호사는 "대개 로펌에서는 전문가 출신을 영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수백명이 움직이는 대형 로펌의 경우, 이공계 전문 변호사 수요는 늘 있게 마련. 때문에 의학·프로그래밍·전자기술 등 새롭게 뜨는 신기술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춘 변호사라면 충분히 영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이공계 전공이 아닌 로스쿨 출신자들의 설 자리는 크게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한 변호사는 "로스쿨을 통해 변호사가 양성되면 그만큼 법률서비스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며 "쉽게 말해 '전세방 구할 때도 변호사를 대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국민들의 비용부담은 오히려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로스쿨이 바라보는 2012년

로스쿨 측은 오히려 파행으로 치달았던 법과대학 교육이 정상화되고 기술적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고시학원의 병폐도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로스쿨을 정상적으로 졸업한 사람이 아니면 변호사시험을 볼 수 없고, 시험 합격률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때문에 합격에 대한 큰 부담감 없이 로스쿨 교육에 충실하면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영남대 로스쿨 양천수 교수는 "그간 다소 획일적으로 편성됐던 법대 교과목과는 달리 로스쿨은 전문교육과 특성화교육을 지향하는 교과목 편성이 가능하다"며 "헌법·민법·형법 등 기본 과목 외에도 환경법, 인권법, 소비자법, WTO법, 도산법 등 전문 과목과 계약법 세미나, 상사법 세미나, 법정책 세미나 등 종합교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배치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실무교육을 받은 변호사에 비해 역량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론과 실무를 병행하는 교육을 받는다'고 항변한다. 기존 사법시험은 이론과 실무 교육이 분리돼 있었지만 로스쿨은 '법문서작성론' '실무수습' '모의재판' '민사법 실무' 등 실무교육이 함께 이뤄진다는 것. 아울러 지역 소재 로스쿨이 지역의 법률서비스를 개선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양 교수는 "지역 로스쿨이 차츰 기반을 갖추면 종전 수도권에 집중되던 우수 인재들이 몰려들 것"이라며 "이는 일종의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켜 장차 법조인을 꿈꾸는 학생들이 지역 대학에 머무는 긍정적 효과도 낳게 될 것"이라고 했다.

2012년에 변호사 2천500명이 배출된다는 점에 대해 로스쿨 측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아직 변호사시험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합격률을 말하기는 곤란하고, 아울러 기존 사법시험 합격자도 2017년 폐지까지 점차 줄여나갈 계획이기 때문에 현재 사법시험 합격자에 비해 신규 법조인이 늘기는 하겠지만 '사법시험 1천명+로스쿨 1천500명' 공식은 맞지 않는다는 것.

아울러 전문화된 영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변호사들이 생겨남으로써 국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법률서비스를 제공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북대 법과대학 김효신 학장은 "경북대 로스쿨의 경우에도 의사, 경찰대 출신, 이공학도 등이 입학했으며, 유명 연구소 연구원들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입학했다"며 "이들의 전문지식과 법률지식이 합쳐지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기존 법조인은 판사, 검사, 변호사라는 영역에만 머물렀지만 2012년 이후에는 보다 넓은 영역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변호사 출신 공무원이 된다든가 기업체에 입사하거나 심지어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에도 변호사의 진출이 가능하다는 것. 김 학장은 "기존의 법조시장은 시장기능이 적용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로스쿨이 활성화되면 변호사 수임비용도 시장기능에 의해 조율이 될 것"이라며 "소송 중심의 법률서비스도 전문화된 영역별로 자문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학장은 또 "로스쿨과 관련한 이 같은 논란은 10년 전부터 있어왔지만 결국 로스쿨 도입으로 결론났다"며 "과연 누가 경쟁력이 있는지 두고 보면 알 것"이라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