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달구벌' 또는 '큰 언덕'이라 불렀다. 북에는 팔공산 남으로 비슬산이 자리 잡고 있다. 해발 1천미터가 넘는 산들이다. 또한 금호강과 낙동강이 감돌아 흐르고, 신천이 남북으로 흐르는 질펀한 들판에 일찍이 터를 열고 도읍을 이뤄 사람들이 살아오고 있다. 다들 말하기를 '복지(福地)'라 하였다.
그 동안 지구촌 곳곳을 다녀보았다. 그러나 인구 300만명을 아우르는 큰 고장을 이처럼 높고 아름다운 산들이 감싸안고 있는 도시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자연 환경에 영향을 받아 사람들의 성정이 억세고 투박스럽다. 처음 만나면 말 붙이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뚝뚝하고, 말씨 또한 투박해서 마치 싸움이라도 하려 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한번 마음 문을 열면 오래도록 변치 않는다. 그래서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는 알밤에 비유하기도 한다. 의리에 죽고 사는 사람들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일어서는 뚝심이 센 사람들이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분연히 일어설 줄 아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우국지사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는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학생 의거가 있었으며, 근세에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얍삽한 짓을 마다하는 기절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소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한 사람들이다. 설령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형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머리를 숙이면 '허~허' 웃으며 등을 두드려준다. 그래서 태산교악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지조가 곧고 꿋꿋한 성정을 지닌 사람들이다.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며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정신의 자존과 스스로의 능력과 믿음을 위해서는 자학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으면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사람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앉아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 얼굴을 씻기 때문에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경상도 사람 조지훈이 쓴 '지조론' 가운데 있는 말이다.
하기야 오늘 날 지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시대착오일는지 모른다. 지조를 지킨다는 것은 지극히 부자연스런 일이요, 시대 흐름을 거역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자기의 사상과 신념, 양심과 주체 따위는 일찌감치 벗어 던지고, 나날이 변하는 세태에 따라 명리와 잇속을 챙기는 게 나을는지 모른다. 공연히 고집을 피우며 뻗대다가는 얻어맞고 짓밟히기 십상이다. 그래서 지조라는 말 자체가 빛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달구벌 사람들은 지금도 의리와 지조, 기백과 관용을 사람살이의 으뜸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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