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민 61% "대구역서 KTX 일부라도 정차해야"

입력 2009-01-29 06:00:00

[대구 도심 재창조] 교통체계 이렇게 바꾸자 (하)도심을 더 가깝게

▲ 총알처럼 지나는 KTX를 멀거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대구역 이용객들. 대구역 일대 상인들뿐만 아니라 대구의 서남부 지역 시민들에게도 KTX 대구역 정차는 절실한 바람이 됐다.
▲ 총알처럼 지나는 KTX를 멀거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대구역 이용객들. 대구역 일대 상인들뿐만 아니라 대구의 서남부 지역 시민들에게도 KTX 대구역 정차는 절실한 바람이 됐다.
▲ 대구 도심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보행권과 대중교통 위주로 교통체계를 개편해 도심을 더 가깝고 쾌적하게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 대구 도심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보행권과 대중교통 위주로 교통체계를 개편해 도심을 더 가깝고 쾌적하게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왜 KTX는 동대구역에만 서죠?"

1월 초부터 대구의 한 대형소매점에서 수습사원 교육을 받고 있는 김수인(28)씨. 부산에서 성장하고 서울서 직장을 구한 그는 "대구의 도시 구조는 참 특이하다"고 했다. 서울처럼 엄청나게 큰 도시도 아니고, 부산처럼 길쭉한 모양도 아닌데 가장 번화가인 도심 한가운데(대구역)를 KTX 정차역으로 이용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것.

"동대구역에 내려 도심에 가려면 시간과 비용이 적잖이 듭니다. 버스노선도 부족해 보이고요. 달서구에 있는 체인점에 가려면 대구서 부산 가는 시간만큼 걸리죠. 도심이 도심다우려면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KTX 대구역 정차하면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대구경북의 첫 기차역으로 만들어진 대구역은 60년 이상 대구를 들고나는 핵심적인 기능을 했다. 1969년 동대구역이 신축되면서 대구역의 위상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고, 2004년 4월 경부고속철도(KTX)가 개통된 후 중소 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로 KTX 개통 전년도인 2003년 대구역 승·하차 인원은 대구 전체의 40%를 넘었으나 2007년에는 대구 전체의 22%로 떨어졌다. 그 결과 대구역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2003년 1만8천865명에서 2007년 1만2천973명으로 줄어든 데 비해 동대구역은 같은 기간 2만7천206명에서 4만6천719명으로 대폭 늘었다.

대구역의 쇠락은 곧 일대 경제권의 몰락과 슬럼화를 초래했다. 출장 가방을 든 직장인, 휴가 나온 군 장병, 여행을 떠나는 가족 등 밤낮없이 북적거리던 사람들이 대구역에서 자취를 감췄다. 상가의 불빛은 일찍 꺼지고, 하루종일 불을 켜지 않는 가게도 적잖다. 대구역 지하도는 낮에도 다니기 마뜩찮아 땅굴 같은 느낌마저 준다. "롯데백화점을 제외하면 대구역 덕분에 돈 버는 사람이 없다"는 일대 상인들의 탄식은 대구 도심의 현재 위상을 대변한다.

KTX 개통 후의 상황은 2020년에 동대구역 일대를 신도심으로 만들겠다는 대구시의 장기발전계획과 궤를 같이하는 결과다. 그러나 동대구역지구 개발은 수조원의 자금이 투입되는 대단위 사업인데다 최근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가능성을 낙관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렸다. 수년 내에 사업자를 결정하는 것조차 어려워 보인다.

그러는 사이 대구역은 더욱 왜소해지고, 도심에 미치는 악영향은 갈수록 커진다. 대구를 찾는 외지인들은 왜 대구역이 아닌 동대구역에 내려야 하는지 헷갈려야 하고, 도심으로 가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동대구역을 종착역이나 출발역으로 하는 KTX 가운데 일부를 대구역에도 정차시키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전, 오후로 나눠 KTX가 한두 차례씩만 대구역에 정차하더라도 각종 관광상품 개발이 가능하고 이는 곧 도심 상권 부활의 열쇠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중구청 관계자는 "KTX 일부라도 대구역 정차를 유도할 수 있다면 상권 부활 아이디어나 정책이 쏟아져나올 것"이라며 "이는 바로 주민들의 염원"이라고 말했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측은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어렵다는 입장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대구역과 동대구역 사이 구간이 불과 3㎞에 불과하고, KTX는 1회 정차에 7~10분이 소요되기 때문에 빠르고 쾌적한 고속철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대구역에 시스템을 추가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찮아 현재로서는 검토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구 시민들의 바람은 이와 달랐다. 본지 도심재창조 특별취재팀이 대구시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1.1%가 KTX 대구역 정차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으며 특히 중·남구 주민들의 80.8%, 달서구와 달성군의 68.9%가 찬성해 동대구역 정차로 인한 불균형을 보여줬다.

◆도심 차량 더 제한하면

지난 회에 제안했던 1차 순환선 내 차량 통행 전면 제한 방안(본지 1월 22일자 18면)은 대구 도심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보행자 중심의 교통정책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도심 상권 활성화 차원에서도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도심 상권을 위축시키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승용차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도심 체증은 하루종일 계속되고, 불법 주정차로 인해 주변 도로나 이면도로의 통행마저 불편해 차를 갖고 도심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고역이 됐다. 하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도로를 넓히고 도심 내 주차공간을 확충하는 것은 잘못된 처방이다. 대구와 같이 오래된 도심으로부터 방사형으로 성장한 도시는 도로망을 확충할 수 있는 기회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영남대 도시공학과 윤대식 교수는 "도심 도로 정비를 위해서는 불법 주정차 단속이 중요하지만 포화상태에 이른 도심 주차능력을 조금 더 키운다고 개선되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도심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도심 교통체계를 더욱더 대중교통 위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사업은 대구 도심의 교통체계를 바꾸는 마지막이 아니라 출발점이 돼야 한다. 더욱 강력한 후속 사업이 계속 나와 '대구 도심은 버스나 지하철로 가는 게 제일 편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먼저 제시되는 방법이 도심 주위 거점지역에 공영주차장을 더 만드는 것이다. 버스와 택시, 특수차량이나 상가 화물 수송을 위한 차량의 제한적 통행 외에 모든 차량 통행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이다. 대구시의 검토에 따르면 현재 조성돼 있는 2·28기념공원 지하,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지하, 반월당 메트로센터, 북성로 공영주차장 외에 동산네거리 등 일부에만 주차장을 더 건설하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도심의 모든 목적지를 걸어서 500m 이내에 둘 수 있는 범위다. 대신 현재의 노상주차장과 경상감영주차장은 폐지하고 불법 주정차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하면 차량의 도심 진입을 관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하반기 완공될 교동시장 주차장(최대 220면)도 거점 주차장으로 활용 가능하다.

도심에서 목적지가 두 곳 이상일 경우를 고려해 순환버스를 도심에 운행하는 방안도 유력하다. 대구시는 3개 노선 정도만 운영해도 걷는 거리를 500m보다 훨씬 더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10분 안팎의 배차간격을 두고 무료 또는 500원 정도 요금을 받으면 도심 내 이동을 편리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과의 연계성을 높이고, 도심 관광 기능까지 수행하는 등 여러 이점이 있다.

대구경북연구원 이상용 선임연구위원은 "공영주차장과 도심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많이 걷지 않고도 불편 없이 도심을 다닐 수 있다"며 "시민들이 더 쾌적하게 도심을 걸어다닐 수 있도록 보행환경과 대기질 등을 개선하면 도심 경제를 살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수요에 비해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교통시설 공급에 기대서는 도심을 결코 시민들과 가깝게 만들 수 없다. 대구시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승용차 선택요일제 정도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보행자와 대중교통 위주의 과감한 교통체계 개편을 통해 운전자는 물론 시민 전체의 의식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는 도심 교통문제 해결도, 도심 활성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외지인은 물론 외곽지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도 도심에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느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며 "더 가깝고, 더 쾌적한 도심을 만드는 것이 도심 재창조를 성공시키는 키워드"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재경·서상현기자 사진·이채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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