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살겠다. 경제부터 살려라."
설 연휴동안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어떤 이야기들을 나눴을까. 유례없는 경제 불황에 움츠린 서민들이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는 온통 어두운 경제와 쪼들린 살림살이에 맞춰졌다. 명절의 넉넉함은 오간데 없고, 살기 어렵다는 넋두리만 토해낸 채 서민들은 또다시 삶의 터전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경제파탄 아우성만 득실=대구에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인수(48)씨는 명절 때마다 부모님께 드리던 용돈을 이번 설에는 드리지 못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설 보너스를 받지 못한데다 이곳저곳에 낸 대출금에 그 이자를 갚느라 지갑이 텅 비어버렸기 때문. 김씨는 "조그만 식당이라도 차려 보려고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려 했는데, 다들 어려운 형편이라고 해 말도 꺼내지 못했다"며 "'직장을 잃었다' '자식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등 각 가정마다 겪고 있는 어려움이 이마저만 아니었다"고 전했다.
경제적 고충은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을 강타했고, 직장과 지위에 상관없이 모두가 겪고 있었다. 이모(37)씨는 "부산에서 큰 사업을 하는 작은 아버지가 지난해 11월부터 일감이 떨어져 지금까지 놀고 있고, 공장을 확장하느라 빌린 대출금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주위에서 벌어져 안타까웠다"고 했다.
기업들의 감원소식에 설 명절 덕담은 "너는 괜찮냐?"는 걱정스런 인사로 대신 채워졌고,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차례상마저 가벼워졌다. 주부 김명희(44·여)씨는 "돈은 없는데 물가가 너무 올라 지난 추석때보다 장을 덜 봤다"며 "특히 고사리며 콩나물까지 국산 식자재의 가격이 너무 비싸 이번 설에는 부득이하게 일부는 중국산 등 가격이 싼 음식을 올려야 했다"고 했다.
◆일자리는 없고…정부 뭐했나 질타도=이달초 대구의 한 공공기관 인턴사원으로 채용된 최모(28)씨는 이번 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최씨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지만 번번히 낙방했고 지난 1년간 이력서만 줄줄이 날렸다. 최씨는 "친척들한테 비정규직인 '인턴'이 됐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어른들이 취직이 된 줄 알고 혼사 얘기라도 꺼낼까 지레 겁부터 난다"고 털어놨다. 대학 졸업 후 3년째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정모(30)씨는 설 명절 연휴 동안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까지 나와 아직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한채 집에서 용돈받고 있는 모습이 자랑도 아니고해서 친척들께는 세배만 드리고 집을 나왔다"며 "또래 사촌들이 취직하고 결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나 자신이 한심해 직장을 얻을 때까지는 친척들앞에 나서지 않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서민들의 삶은 불황속에서 '희망'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젊은이들, 돈이 없어 자식 결혼을 늦춰야하는 부모들, 뭘 하고 살아야할지 좌표를 잃은 서민들의 분노는 정치권을 향했다.
김명근(52)씨는 "대학 졸업하고 취직할 곳이 없어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앞으로 과연 이 나라를 누가 이끌어 갈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정부는 청년 실업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전주식(55)씨는 "월급만 받아서는 앞으로 커가는 자식들 학비도 못내고 내집 한칸 마련할 수 없어 너나 없이 한탕만 노리게 되다 보니 나라꼴이 엉망이 돼 간다"며 "돈 있는 사람만 잘 살게 하고 돈없는 사람은 자식들까지 빈곤을 물려줘야 하는 나라에서 무슨 희망을 꿀 수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이인숙(49·여)씨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장담했던 MB(이명박)정부가 들어선지 1년이 지났는데도 서민살이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며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싸움이나 하는 동안 서민들은 길거리로 나앉아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서민들은 올 봄에는 살림살이가 좀 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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