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소생산 공단에 왜, 불이 날까.

입력 2009-01-28 06:00:00

옛말에 등 따시고 배부르면 富者(부자)라 했다. 천석꾼이 아니라도 춘궁기를 넘길 양식과 땔감 걱정이 없으면 그렇게 불렀다. 추수한 벼를 뒤주에 가득 채워 넣고, 장작과 나뭇단(束) 가리가 높다랗게 담장을 기어올라 그 모습이 온 마을을 흐뭇하게 하면 그것보다 더 등 따시고 배부른 부자가 어디 있을까.

이런 땔감을 놓고 얘기해 본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민둥산이 많아 산주인들은 연료공장 또한 철저히 보호하였다고….

산림청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림면적은 전국토의 64%를 차지한다. 이런 산림은 먼동이 트면 곧바로 산소 생산공장으로 탈바꿈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산림도 일과를 중단하고, 이튿날 다시 일어나면 산림도 산소 생산을 재개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최고의 자원을 제공하고 최고의 생산활동을 지원하는 셈이다.

이런 산소 생산공단에 낙엽 지는 가을과 건조한 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산불이 발생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왜 이렇게 안타까운 현상은 그칠 줄 모를까. 따져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저절로 불이 났을까. 그렇지 않다. 분명 누군가 불씨를 다뤘기 때문이다.

먼 옛날에는 자연적인 산불 발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울울창창한 산림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천연림이었기 때문에 나무와 나무, 나무와 가지끼리 서로 맞닿았고, 겨울철은 계절적인 영향으로 바람 또한 강하다 보니 나무나 가지끼리 서로 마찰을 일으켜 산불이 발생하던 때도 있었으니 이는 아득한 이야기로 남아있을 뿐이다.

산불이 발생하면 대부분 담뱃불 부주의란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담뱃불이 맞고 맞지 않음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따질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또 다른 불씨를 취급한 사실, 그 자체 찾기에 주목하고 싶기 때문이다. 여러 유형의 원인 중에 지난가을의 예를 한 가지만 들어본다.

단풍철로 접어들자 많은 등산객들이 산을 찾았다. 필자는 유명한 산에 일행들과 숲 탐방길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곳엔 가을 햇살이 나뭇잎을 강하게 구워낸 결과 화려한 색상들을 산천에 들춰내고 있었다. 이를 만끽하는 인파들은 국립공원의 틈을 메웠다. 그런데 계곡부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화기를 취급하는 등산객이 있지 않은가. 물론 하천의 돌무더기 위였지만 본격적인 산불철이 다가오는 시점에 아직도 산속에서 이런 행위를 하는 자가 있다는 자체에 깜짝 놀랐다. 이를 놓고 볼 때 분명한 불씨 취급은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한마디로 쏘아붙였다. 입산은 물론 산림의 혜택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지난해 전국에서 일어난 389건의 산불로 인해 229.6ha의 면적이 피해를 당했다고 하니 산불자체가 불쾌하다. 산림은 연간 66조원의 공익적 가치가 있다지만 울타리 없는 재산은 전국에 노출되어 있다. 산에 대해서는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는 등기 없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전 국민이 빈틈없이 산을 지킨다면 공익적 가치는 감소되지 않을 것이다.

주인도 아니면서 휴일이면 내 산같이 드나드는 산, 그곳에서 대기정화와 수원함양, 그리고 토사유출 방지와 산림휴양을 제공해 주는 그 엄청난 고마움을 왜 모를까.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되어 가꾸고 보호하여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지속되는 가뭄 속에 산소생산 공장이 부도당하지 않도록 중단 없는 가동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권영시(대구시 조경담당사무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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