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교의 일본어 源流 산책] 미마이(見舞い)

입력 2009-01-28 06:00:00

일본사람들은 '병문안' 가는 것을 '미마이'(見舞い) 간다고 한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춤추는 것을 보러간다'(舞を見に行く)는 뜻이 되어 병문안과는 전혀 맞지 않는데, 이를 우리 고대사의 맥락으로 풀어보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병에 걸리면 액신(厄神)에 걸렸다고 해서,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마을 곳곳에서 있었던 이 굿은 정말 신이 보아도 재미있고 엄숙하기조차 했던 신비스런 인신(人神)의 춤이었다.

대개 이 굿은 3일 밤낮을 계속하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굿을 보러 갔으며, 갈 때는 반드시 자기집에 있는 귀한 것을 무엇이든지 한가지씩 들고 가는 습관이 있었다. 예를 들면 달걀, 쌀, 잡곡, 채소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만일 이 굿을 보러가지 않으면 액신이 자기 집으로 옮겨올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참석하여 '굿'은 마을의 일종의 행사처럼 되었었다.

무당들은 이런 이웃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받을 때는 정중한 마음으로 받는다는 표시로써 손으로 마음 '심'(心)자를 쓰고 받았는데, 이는 이웃들의 고운 마음씨를 신에게 보고하고 환자의 빠른 쾌유를 마음으로 기원하겠다는 뜻에서였다.

이것이 와전되어 오늘날 일본의 씨름(すもう)을 보면, 이긴 장사(力士)가 마음 '심'(心)자의 수도를 그리고 승자의 보수를 받는 것을 우리는 일본 TV에서 자주 보며 역사의 흐름과 변천을 실감한다.

이렇게 마음 '심'(心)자를 손으로 쓰는 것을 일본말로 하면 '데도키리'(手刀切り)라고 하는데, 이를 직역하면, '손으로 쓴다'라는 뜻이다.

이렇듯 고대사회는 우리가 사는 오늘날처럼 개인주의가 아닌 그야말로 하나의 생활 공동체로써 마을의 한사람의 슬픔은 모두의 슬픔이고, 한사람의 기쁨도 역시 모두의 기쁨이 되었던 그런 가족 사회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병이 들면 환자가 무당에게 굿 값을 내는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이 가져 온 물건들이 무당의 보수가 되었으며, 이것이 고대사회의 상부상조 정신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무당에 의한 굿은 없어졌어도 그런 관습이 아직도 일본에 남아 병문안을 '미마이'(見舞い)라고 하는 것이다.

'굿'은 또 '혼풀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서기'를 보면 텐무(天武)천황이 병으로 눕자 혼을 불러들이는 초혼제(招魂祭)인 '미다마푸리'를 한 기록이 있다. '미다마푸리'는 '오홈다마푸리'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미'나 '오'는 존칭 접두어이고, '다마'는 '홈' 즉 '혼'(魂)으로, 우리말로는 '혼풀이' 또는 '살풀이'라는 말이다. 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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