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형 지음/작가콜로퀴엄 펴냄
유가형 시인이 두번째 시집 '기억의 속살'을 출간했다. 시인이란 사람들이 그렇지만, 유가형은 밝은 눈으로, 낯익은 일상에서 낯선 것들을 찾아낸다. 그 낯선 것들은 눈에 띄지 않았을 뿐 늘 거기에 존재해온 근원적인 것들이다.
시작(詩作)은 시인의 내적 상태를 드러냄이다. 유가형은 '팔공산 물구름으로 칭칭 압박붕대를 감고 있다 -팔공산에 비 그치다-' 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상처입었다고 말한다. 팔공산에 얹힌 구름이 단순히 빗물 머금은 구름이 아니라 압박붕대로 보이는 것은 시인이 붕대를 감아야 할 만큼 아프다는 말이다.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은 여성의 삶에 관한 것들이다.
'(상략)골 깊은 가난이 입던 짧은 치마/ 두터운 슬픔이 내 차림이지/ 얼룩얼룩 무늬 진 얼굴에/ 질끈 묶은 하얀 수건, 끝동소매/ 그 좁은 어깨 계수나무 싹이 나도/ 바라보는 이 없지/ 외발 썩어 뒤로 벌렁 넘어져도/ 쉬지 못하는 게 내 운명이지(하략)' -허수아비- 중에서.
시인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살았다. 얼굴에 맺힌 두터운 슬픔은 익숙한 차림이 됐다. 어여뻐야 할 소녀의 얼굴엔 울음 자국, 땟물 자국이 얼룩무늬로 남아있다. 그 얼룩진 얼굴 닦아주는 사람은 없었고, 지쳐서 넘어져도 쉴 수조차 없었다. 유가형이 토해낸 시들이지만, 그 시절(유가형 시인은 이순을 넘었다)을 살아온 이 땅의 여성들은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유가형의 슬픔은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세월의 슬픔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그 시절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는 않는다.
'(상략)옥양목 홑치마 너럭바위에 널면/ 햇볕이 따라와 물어뜯던 아픈 기억/ 무겁던 상처 손톱으로 긁으면/ 반닫이 흠집으로 남아있지' -반닫이- 중에서
아이였던 시인은 자라서 어른이 됐지만 아픈 기억, 무거운 상처는 흠집으로 남아 아직도 생생한 것이다. 반닫이의 흠집을 볼 때마다 시인은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인은 또 늙어가는 몸뚱이를 보며 슬픈 노래를 부른다.
'(상략)삼등열차 떠난다 내 몸이 삐그덕거린다 내 지나온 길에 새 자갈을 깔고 청진기를 대보고 수 없이 망치질하는 사람들…' -선로- 중에서
선로는 기차 하중을 견디는 여성성의 은유다. 오랜 세월 기차를 보내고 기다리느라 몸은 망가졌다. 그래서 이제 몸은 낡아서 삐그덕거린다. 새 자갈을 깔고 청진기를 대보고 망치질해 보지만 낡은 선로를 어찌 할까. 청진기를 대는 일도, 망치질을 해대는 일도, 새 자갈을 까는 일도 이제는 지쳤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상략)나, 썩고 있나 봐/ 나는 60년된 트란지스터 라디오 건전지 한 번 갈아 넣지 않고 참 오래도 썼다 모두 분해해 폐기 처분해 버릴까?/ 아니 폐기처분 당하고 싶어!' -썩고 있나봐- 중에서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 나타난 시인의 정서는 '아, 어머니!'다.
생명의 어머니, 길러주신 어머니, 슬픈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그러나 이제는 늙고 주름져 지금까지 살던 동네를 떠나 강 건너 먼 마을로 이사준비를 서두는 어머니…. 아직 짐꾼은 오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벌써 떠날 채비를 한다. 떠날 집이라며 덜컹거리는 문짝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사준비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서럽고 안쓰럽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곧 시인의 모습이다. 나도 어머니처럼 생명을 낳아 길렀고 슬픈 세월, 고단한 세월을 살았다. 그리고 또 어머니를 따라갈 것이다.
시인의 전작 '백양나무 껍질을 열다'가 그랬듯, 시집 '기억의 속살'에 묶인 시들을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여성의 삶과 한이다. 124쪽, 7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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